여객컨테이너선 海華호 단독 승선취재37시간 긴 항해 선상세미나등으로 활용귀빈실등 총31개 객실 및 위락시설 갖춰 ‘72년산 벨기에製 1만 3,000gt급 ‘海華’호. 여객/컨테이너선인 이 선박에 승선한 시각은 상해行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난 지 30여시간이 지난 후인 5일 오후 3시(현지시각). 이 30여시간동안 우리 일행들은 그래도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의 동남쪽지역인 상해에서 빠듯한 일정을 효율적으로 보냈다. 1932년 4월 29일 매헌 윤봉길의사가 상해점령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군정수뇌들에게 폭탄을 투척했다는 홍구공원을 비롯 내년이면 80주년을 맞는다는, 김구선생의 얼이 서린 곳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등 상해일원 관광지와 예로부터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는 소주 등 상해 인근지역을 두루 돌아봤던 것이다. 이처럼 중국관광을 마치고 해화호에 몸을 실은 첫날, 이번 항해에선 첫 취항임을 감안, 일반승객보다는 초청 관계자들(중국인 62명, 한국인 19명)과 함께 37시간이라는 기나 긴 여정에 올랐다. 배정받은 객실에 여장을 풀고난 뒤 만찬전까지 호화객실 4개와 표준 2인, 4인, 6인방 등을 비롯 수영장, 영화관, 바, 커피숍, 오락실, 가라오케/무도장, 레스토랑, 면세점 등 각종 위락시설들 및 의무실 등이 갖춰져 있는 해화호를 찬찬히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해화호의 객실규모는 귀빈실(1인방, 2인방) 2개, 특실(2인방) 2개, 1등실A(2인방) 8개, 1등실B(4인방) 9개, 2등실A(6인방) 3개, 2등실A(8인방) 6개, 2등실B(20인방) 1개 등으로 총 31개이다. 승선 이틀째. 우리 일행은 특별히 시간을 내 기관실등을 둘러보며 위성항법장치니 기타 선박운항의 제반사항들에 대해 항해사들과 대화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 항해사들을 비롯 해화호에 배치된 승무원 규모는 자상한 성품을 지닌 듯한 鄭小毛(Zhen-g Xiao Mao)선장 휘하에 73명정도. 이 승무원들이 선박의 적재적소에서 여객들의 안전과 서비스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렇게 선상에서 이틀밤을 보내면서 망망대해에서 내리쬐는 볕을 유유히 감상하는 가운데 인천항에 입항한 시각은 7일 정오 무렵. 마침 인천부두를 견학왔다던 대학생들이 우리 일행을 열렬한 박수세례로 맞아 주었다.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오전 8시 입항이나 갑문을 통과하는데 일정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폭우로 심한 물난리를 겪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우리 일행은 잔잔한 물결을 타고 무사히 다시 고국땅을 밟았다. 현재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가 위협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해 한국과 상해간의 물동량만 살펴보더라도 수출의 경우 9만 1,444teu, 수입 9만 8,302teu로 상해의 중요성은 韓中교역에 있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함께 중국의 개방화 물결에 출렁이는 중국인들이 외국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어 앞으로 이 항로가 여객과 화물운송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또한 항림해운에 따르면 37시간이라는 장시간 항해일정에 대비 선상세미나를 개최하는등 연수원을 자체적으로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들을 겨냥, 중국출장길에 회의장소로 선박을 활용하는 방안이 개발되고 있어 對한국인 여객유치도 활성화 될 전망이다. 끝으로 이번 일정으로 고생하신 항림해운의 윤효영이사님을 비롯 중국 방문과 해화호 승선 기회를 마련해 준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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