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법을 작성하기로" 김인현(목포해양대학교 해상운송시스템학부장, 선장/법학박사)

제 17차 유엔 운시트랄 운송법회의가 지난 4월 3일부터 13일까지 뉴욕에서 개최되어 처분권의 종류를 (1) 당사자의 합의로 계약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와 (2)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로서 처분권자가 운송인에게 (a) 계약내용의 범위 내에서 지시를 줄 수 있는 권리 (b) 수하인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 (c) 미리 정한 목적지보다 앞선 곳에서 운송물 인도를 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성되는 것으로 확정했다.

김인현 목포해양대학교 해상운송시스템학부장이 이번에도 유엔 운시트랄 운송법회의에 다녀온 후 그 결과 내용을 담은 글을 기고해 주었다. 매번 본지에 유엔 운시트랄 운송법회의 결과 등을 보내주고 있는 김인현 목포해대 해상운송시스템학부장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보내주신 글을 전문 그대로 게재한다. -전문-


1. 서

 2006년 4월 3일에서 4월 13일까지 뉴욕의 유엔본부빌딩에서 제17차 운송법회의가 개최되었다. 한국 대표단은 유엔본부 대표부의 정용수검사, 법원의 이성철 부장판사, KMI의 최영석 연구원 그리고 필자로 구성되었다.

 이번 회의는 다음 비엔나회의까지 2회독을 종료한다는 계획하에 지난 16차 회의에서 미결된 사항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토의 의제로는, 처분권, 권리의 이전, 조약의 적용범위와 계약자유의 원칙, 수하인에의 인도, 운송증권등이 다루어지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회의 중간에 모델법을 만들자는 의견이 제안되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으로 간주된 권리의 이전 부분은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다른 부분은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11월의 18차 비엔나 회의에서 책임제한등 남은 부분을 처리하여 2회독을 마치고, 운시트랄의 전통에 따라 제3회독을 2007년 뉴욕과 비엔나에서 하게된다. 2008년에는 조약화가 될 것으로 본다. 아래에서 이번 회의에서 다루어진 중요한 내용을 살펴본다.

2. 모델법

 모델법은 연성법(soft law)라고도 한다. 이는 강행적인 규범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약과 다르다. 그러나, 각국이나 당사자들은 자국의 국내법 혹은 당사자들의 약정으로 모델법을 사용함으로써 여기에 규범력을 가져오게 할 수 있다.

 대표단들은 본 초안이 조약으로 성안될지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과 조약화에 이르기까지 길어지는 검토기간에 대한 우려, 일정한 부분은 각국의 이해와 선주와 화주들의 이해가 크게 상충하여 합의안을 도출하기가 어려운 점등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델법을 우선 만들기로 하자는 네덜란드대표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무국에서는 이를 운시트랄 총회등과 협의하기로 하였고, 대표단은 모델법에 포함시킬 내용과 조약에 포함시킬 내용을 구별하는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비공식 회의에서 후보군으로 오른 내용은 권리의 이전, 제소권자, 공동해손의 장등이다. 이런 장의 내용은 국내법에 일임하는 것이 좋거나 합의가 어려운 부분으로서, 조약에서는 삭제되고 모델법으로 가게 된다.

3. 처분권(right of control)

 이번 회의중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중의 하나는 바로 처분권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 법상 처분권은 생소한 개념이다. 그러나 상법상 이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상법의 제139조와 제140조가 조약초안의 처분권의 내용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계약법의 원칙상 당사자가 체결한 운송계약과 다른 내용을 화주가 운송인에게 요구할 수 없다. 만약 화주가 계약내용과 다른 것의 이행을 운송인에게 요구한다면 이는 새로운 계약이 되어야 하고, 화주는 운송인에게 별도의 운임을 지급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운송계약의 일부로서 간주되어 운송인이 추가적으로 이행하여 주어도 되는 사항들이 있을 수 있다. 

 운송계약상 양륙항이 부산항이었지만, 새로운 수하인이 인천에 소재하고, 그 선박의 다음 양륙항이 인천이라면, 그는 인천에서 운송물을 수령하는 것이 부산에서 수령하여 내륙운송을 하는 것보다 편리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수하인에게는 처분권이 주어지고, 운송인은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처분권의 요지이다. 그런데 이런 처분권이 무조건 인정되어서는 운송인의 운항에 막대한 지장이 온다. 특히 컨테이너 운송에서 한 화주의 요구에 응하기위하여 다른 수많은 화주의 운송물 인도에 지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처분권의 인정에는 일정한 제약이 필요하게 된다. 

 이번 회의에서는, 처분권의 종류는 (1) 당사자의 합의로 계약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와 (2)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로서 처분권자가 운송인에게 (a) 계약내용의 범위 내에서 지시를 줄 수 있는 권리 (b) 수하인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 (c) 미리 정한 목적지보다 앞선 곳에서 운송물 인도를 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구성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특히 (2)(c)와 관련하여 초안의 “항해도중”이라는 지리적 범위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어 계획된 (programmed)이라는 수식어가 추가 되었다. 이는 정기선운항에서 계획된 예정항구가 아니면 처분권이 인정되지 않게되므로 운송인에게 안정적인 운항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핀랜드 대표는, 이와 관련하여, 정기선과 부정기선에서 반드시 방문하여야 하는 항구와 시간이 정기선에서는 확정적이고 부정기선은 그렇지 않으므로, 이를 구별하여 정기선에서는 더 제한적이 되어야 하고 부정기선에서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하였다. 이 안은 지지를 얻지 못하였으나, 검토의 가치가 있는 안으로 나중에 생각되었다.

 처분권은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추가비용이 발생되면 화주가 부담하여야 하는 것이고,  (2)항의 (b)호와 (c)호는 합의로 변경이 가능한 임의적인 것일지라도, 운송인에게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특히 화주측이 처분권을 전폭적으로 사용할 것을 시도하면, 처분권이 인정되는 한계로서 기능하는 “합리적인 범위”를 둘러싸고 법적 분쟁이 예상된다.

 선하증권등이 발행되지 않은 경우에 처분권의 존속기간에 대하여, 두가지 대립되는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운송물이 양륙항에 도착하고 수하인이 인도를 요청하면 종료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실제로 수하인이 운송물의 인도를 수령하는 시점에 종료된다는 것이었다. 다수는 가능하면 처분권을 처분권자가 오래 가질 수있도록 하기 위하여 후자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후자를 취함으로써 수하인의 권리보다도 처분권을 가지는 shipper의 이익이 더보호되는 결과가 되었다.

4. 적용범위와 계약자유의 원칙

 지난 회의에서 확정된 본  조약의 적용범위와 관련하여 정기선 운항에서의 운송계약에 대한 적용을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부정기선 운항에서 부합계약의 성질을  갖는 운송계약을 추가하기로 하여  알기쉽게 문구수정이 있었다. 

 헤이그 비스비 규칙은 운송계약에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만을 규율하고, 함부르크 규칙은 모든 운송계약에 적용된다. 이러한 적용범위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강행규정으로서 조약이 갖는 운송인의 의무감경금지 규정이 적용되는가 아니 되는가에 있다. 우리 법은 원칙적으로 헤이그 비스비 규칙체제를 취하면서 감항능력 주의의무의 경우에만 강행규정이 항해용선 계약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현대의 운송에서 해상화물운송장(Seaway bill)의 점증하는 사용과 곧 도래하게 될 전자 선하증권의 사용은 기존의 체제의 보완을 요구하게 된다. 기존의 체제는 유통성이 있는 선하증권이 제3자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므로 계약당사자가 아니었던 제3자의 보호가 특히 문제가 되었으므로 유통성 있는 증권의 규율에 초점을 두었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초안은 유통성이 없는 증서가 발행된 경우에도 그 소지자를 보호하도록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아예 증서의 발행여부와 관계없이 수하인, 처분권자 등 나열된 자에게 모두 본조약이 적용되도록 되었다. 이는 큰 변화로써 전자선하증권의 발행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운송인으로서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국 대표단은 이러한 지나친 확장에 반대하면서 증서를 연결고리로 하자고 하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량화물정기운송계약(service contract;OLSA; Volume contract로 조약초안에서 이름이 변경되어 사용되나 동일한 것임)에 대하여 초안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계약은 우리 법하에서는 생소한 것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미국의 시어스 백화점이 노트북 컴퓨터를 매 2주일에 한번씩 각각 1000개씩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그 운송도 이에 맞추어서 이루어져야 한다. 시어스는 한국의 한진해운과 1년 기간동안 2주일에 한번씩 컨테이너 한 박스에 1000개씩의 노트북을 운송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널리 알려진 COA계약과 다른 것은, 한진 해운은 스케줄이 정하여진 정기선운항을 매 2주일에 한번씩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시어스와 한진해운의 관계에서 화주가 운송인보다 열악한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운송인이 작성하여 화주에게 불리하므로 화주를 보호한다는 이유를  제공하는 소위 부합계약으로서 성질이 이러한 운송계약에는 없으므로, 당사자에게 계약 자유의 원칙을 적용하여 본 조약의 강행규정의 의무와 책임을 면제하여 주자는 것이 그 핵심내용이다. 따라서 책임제한 액수도 가감이 가능하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제도가 인정되면 대량화물정기운송계약을 이용하는 운송인과 화주는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자들에 비하면 유리한 입장에 있게 된다. 따라서 많은 반대가 있었다. 또한, 제3자 보호의 문제가 있다. 제3자는 명확하게 의사를 표명한 경우에만 계약당사자가 정한 의무와 책임의 감면의 적용을 받게 된다. 공익의 목적상 감항능력주의의무, 위험물에 대한 보고의무 등은 절대 합의 불가 사항으로 존치되게 되었다.

 운송인이 의무와 책임을 감면하는 것은 무효가 된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화주의 의무와 책임의 감면도 허용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하여 심각한 논의가 있었지만, 소량화주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과 현대의 운송에서는 화주의 지위가 운송인보다 강한 경우도 있으므로 운송인과 동일하게 이들도 규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서 다음에 추가논의하기로 하였다. 

5. 운송물의 인도

 운송인의 의무 중에서 인도의무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운송인이 가지고 있는 인도와 관련한 법적 문제에는 운송물의 불법인도(선하증권을 회수하지 않고 운송물을 인도하는 경우 운송인이 책임을 부담)와 수하인이 나타나지 않아서 인도가 지연되는 경우의 문제가 있다. 후자의 경우에 부두에 운송물을 내려두고 출항하더라도 선하증권 소지인이 있다면 운송인의 인도의무는 계속되게 되므로 운송인은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런 경우의 해결을 위하여 우리 법은 제803조를 두어 일정한 요건하에서 운송인은 인도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을 두었다.

 조약초안은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를 포함하여 수하인이 지정된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처분권자에게 통지하여 그의 지시를 받아서 그 지시에 따르면 인도로 간주가 된다는 규정을 둔다. 처분권자들의 지시가 없으면 운송인은 적당한 장소에 내려두거나, 개장하거나, 매각처분까지 할 수 있다. 이 때 운송인의 책임은 수하인 측에 자체책임이 있으므로 감경되도록 한다. 그 주의의무의 정도가 논란이 되었다. 미필적 고의의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던 당초 초안의 안에 대하여 이보다는 강한 의무를 부담하자는 견해가 주를 이루어 일반적인 상당 주의의무와 미필적 고의의 중간 형태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부담하거나, 아니면 자기재산에 대한 주의의무(일반적인 의무보다 경감되는 의무임) 정도가 후보군으로 올랐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 상법하의 입장보다 운송인은 훨씬 경감된 주의의무를 부담하게 되어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고 할 수있다.

6. 송하인의 의무

 현대의 컨테이너 운송에서는 컨테이너 안에 내장된 내용물에 대하여 운송인이 알 수없으므로 송하인이 그 내용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줄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리하여 본 조약초안은 송하인의 의무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이러한 의무에 대하여 규정한다. 

 이러한 송하인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전제로서 운송인도 또 송하인에게 제공할 정보가 있게 된다. 예컨대, 어떠한 형태로 운송을 한다던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무가 독자적인 것인지 아니면 제17조에 나와있는 운송인의 운송물에 대한 의무와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또한  위험물에 대하여도 위험물 표시를 위한 이행의 전제로서 운송인에게 정보제공의무가 있는지가 논란이 되었지만, 운송인은 이러한 의무까지는 없고 일반적인 신의성실로 행동한다는 것으로 족하다는 견해가 우세한 가운데 추가논의하기로 되었다.
 송하인이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때문에 발생한 손해배상의 문제도 다루어졌지만, 운송인의 정보제공의무와 함께 추후에 논의하기로 되었다.

7. 지연손해
 
 지연손해는 물적손해를 동반하는 손해와 순수한 경제적 손해만 있는 두가지가 있을 수있다. 미국법은 후자의 경우는 배상이 되지 않는 손해이다. 우리 나라는 인과관계가 있고 예견가능성만 있으면 원칙적으로 배상이 된다. 

미국측은 화주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려면 운송인과 같이 책임제한이 가능하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검토를 하였지만, 책임제한의 설정이 어렵다고 하면서, 화주에게는 지연손해를 묻지말고, 운송인에게는 약정한 경우에만 경제적 손실로서의 지연손해를 배상하자는 안을 제안하였다.(물적 손해를 동반한 지연손해는 조약에서 다룸) 따라서 이들은 모두 국내법에 의하여 처리된다. 여기에 대하여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제안에 이견을 보이면서 다음 회기에 추가논의하고자 하였다.

8. 결

 다음 회의에 나가기까지 모델법에 들어갈 사항에 대하여 업계와 학계는 의견을 제시하여 이를 결정하여주어야 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지연손해에 대한 부분도 우리 나라의 입장을 확고히 정하여주어야 한다. 

 운송법회의는 비단 운송인만을 위한 회의가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각국의 대표단이 추구하는 것은 통일성과 예측가능성이다. 예측가능성은 상인들로 하여금 안정되게 상거래를 행할 수있는 촉진제의 역할을  한다. 운송인과 화주측 모두를 위한 조약이 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해법학회와 선주협회는 공동으로 7월초에 미국대표를 하고있는 텍사스주립대학(오스틴)의 마이클 스털리 교수를 초청하여 여름철 학술발표회에서 운시트랄 운송법회의에 대한 심층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전반적인 운시트랄 운송법조약초안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본 조약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듣도록 할 예정이다. 업계의 실무담당자들의 많은 관심과 참석을 요망한다.   

 이제 운시트랄 운송법회의도 종결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 그간 이 회의에 참석하던 한국대표단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번에는 법무부에서 대표를 파견하지 않았다. 해수부에서는 제13차 회의 이래로 5회에 걸쳐 필자를 대표로 파견하여 우리 나라의 입장을 대변하고 조약의 내용파악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물론이고 목포해대 측에도 끊임없는 지지와 후원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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