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淙熙/KMI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 해운정책을 재조명해봐야 할 시점이다. 국가 해운정책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해운과 국가 간의 진정한 연계(genuine link)가 전제된다. 여기서 국가 해운정책이란 자국 해운산업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정책을 의미한다. 전통 해운국은 진정한 연계를 바탕으로 국가 해운정책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국가안보 차원에서 해운과 국가 간의 진정한 연계를 기반으로 해운정책을 추진한다.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 대다수 서유럽 전통 해운국가도 제2선적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해운과 국가 간의 진정한 연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국가 해운정책을 새롭게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 소위 해운산업의 세계화 추진과 함께 그런 연계가 약화되면서 국가 해운정책이 점차 퇴조하는 모습이다. 다음 사례는 그간 우리나라 해운정책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7월 18일 일본 최대 선사의 한국 현지법인인 NYK벌크쉽코리아 社가 해양수부에 등록했다. 이로써 同社는 103 번째 우리나라 외항 국적선사가 됐다. 이에 따라 기존 국내선사는 국적선사로서 그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아울러 국적선 보호냐 아니면 국적선사 보호냐를 두고 한 때 치열했던 국내 해운업계의 해운정책 철학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제 국적선과 국적선사 어느 쪽도 과거와 같은 강력한 국가 해운정책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양쪽 모두 국가와의 진정한 연계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해운과 국가 간의 진정한 연계를 입증하는 요소는 국가마다 견해가 다르다. 진정한 연계를 강화할 목적으로 채택된 「1986년 유엔선박등록조건협약」조차 입증 요소를 느슨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할 때 해운과 국가 간에 진정한 연계가 존재한다고 간주된다. 첫째, 선박운항이 소속국가의 국민경제에 공헌해야 한다. 둘째, 해운업 수지와 함께 선박매매가 소속국가의 국제수지 안에서 처리돼야 한다. 셋째, 선박에 소속국가 국민을 고용해야 한다. 넷째, 선박 소속국가 국민이 선박의 수익적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편의치적제도와 다국적 해운기업으로 대표되는 현대해운에 있어서 언급한 관계를 모두 충족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이런 세계적 추세에 예외가 아니다. 특히 선박에 자국민을 배승해야 하는 요건과 관련해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 초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국적선에 외국선원 배승을 제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진정한 연계의 이완을 가져왔다. 이외에도 외국 자본의 국내 해운업 진출 허용과 우리 선박의 은밀한 해외치적 증가 등이 한국해운의 진정한 연계를 크게 약화시켰다. 따라서 최근 일본 해운업의 우리나라 진출은 이런 맥락에서 놀랄 사안도 분개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서유럽의 경우처럼 한국해운의 진정한 연계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인바 그 방안은 국가 해운정책의 일대 전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국가 해운정책 전환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해운의 개방정책 추진 결과 마땅한 정책수단 동원이 어렵다. 또한 정책 전환에 반드시 수반되는 재원 마련이 국민 정서상 예전 같지 않다. 그러므로 국가 해운정책 전환은 해운의 보호·지원보다 한국해운에 대한 국가적 관심 제고에서 찾아야 한다. 일본의 대량화물 해상수송체제가 그 좋은 예다. 일본은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자국으로 수입되는 대량화물의 80% 이상을 일본선사가 수송한다. 이 비율이 50%에도 채 못 미치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일본의 자국해운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그리스 해운 역시 높은 국가적 관심의 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가 해운정책, 이제 진정한 연계 강화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 해운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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