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淙熙/ KMI 선임연구위원

 

▲ 강종희 선임연구위원
최근 정기선사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가 일대 붐을 이루고 있다. 한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국내외 조선소의 1만 2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잔량이 100척을 넘어선다. 실로 대단한 건조물량이다. 이런 초대형선 건조는 처음 유럽 대형 정기선사가 주도했다. 이후 독일과 그리스 선주가 발주에 나서면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가 과열 기미를 보이고 있다. 국내 대형 정기선사의 초대형선 확보 경쟁도 예외는 아니다.

 컨테이너선의 빠른 대형화 진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상당수 전문가는 1만 2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시점을 2010년경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2025년 이후에야 1만 5000teu가 넘는 극초대형 선박이 취항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컨테이너선이 빠르게 대형화된 데는 무엇보다 선박 건조기술 발전이 뒷받침한다. 특히 우리나라 조선기술은 이 부문에서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기선사의 선박 대형화 추진은 조선기술보다 장기 해운불황에 더욱 기인한다. 주지하다시피 1980-90년대에 걸쳐 해운불황이 오래 지속됐다. 당시 불황은 만성적인 공급과잉이 주된 원인이다. 이에 일부 정기선사는 해운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선박 대형화를 추진했다. 즉 이들 선사는 대형선을 투입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코자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의 우위를 확보하고 동시에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외에도 당시 연료 및 선원비 상승과 이자율 하락 등이 선박 대형화를 촉진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됐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 4300teu급 포스트 파나막스(Post Panamax) 선형이 처음 등장했다. 이어서 1990년대 말 6000teu급 슈퍼 포스트 파나막스(Super Post Panamax)선의 취항이 이뤄졌다. 그러나 컨테이너선 대형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해운시황이 개선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선박 대형화가 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2001년 7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처음 건조됐다. 그 후 불과 5년 사이   8000teu급 선박이 주력 선형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 선형도 곧바로 1만 2000teu급 선박에 그 자리를 내주면서 세계 정기선 해운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 물음에 대해 그럴싸한 답변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대형선이 반드시 유리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큰 선박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集貨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기선사도 그럴 개연성은 높지 않다. 반면 선박 대형화에 따른 고정비 성격의 비용증가는 예상보다 크다. 운송효율 측면에서도 대형선은 불리하다. 예컨대 대형 선박은 소수 중심 항만에만 선택적으로 기항함으로써 추가적인 피더운송과 내륙운송 비용을 발생시킨다. 또한 각종 사회적 비용초래를 감안하면 대형선의 경제성은 기대보다 낮다. 따라서 정기선사의 초대형선 확보는 경제적 측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

   짐작컨대 정기선사가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확보하고자 하는 주된 이유는 소위 “대가가 큰 거짓의 원리(Costly to Fake Principle)"를 따르는 것이다. 이 원리는 잠재 라이벌에게 믿을만한 신호를 보내려면 거짓으로 꾸미기에는 너무 큰 대가가 따르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일종의 술수다. 이러한 신호로서 몸집이 자주 거론된다. 몸집이 클수록 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큰 상대에겐 주춤거리지만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상대는 쉽게 덤벼든다. 정기선사가 대형선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몸집 불리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해운동맹이 와해된 오늘날 정기선사로서 이런 몸집 불리기식 초대형선 확보는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 해도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덩치 큰 선박은 그저 허풍선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선박확보는 허풍이 아니라 리얼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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