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한국해기사협회 '월간 海技' 편집장

직장암으로 인해 7개월의 투병 후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김동규 '월간 해기' 편집장이 "해양전문 신문 중에서 가장 적절한 매체라고 여겨 처음으로 에세이 한편을 기고한다"며 늦가을 밤하늘을 보며 쓴 에세이를 보내주셨다.

김동규 편집장은 지난 2006년 남편의 부재로 겪는 선원가족의 애환과 남편의 안전항해와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붓글씨을 쓰고 쓰다 서예가가 된 어느 선장 부인의 삶과 일화를 다룬 '창도'로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김동규 편집장님의 건강회복을 기원하며 보내주신 글을 전재한다. -전문-


늦가을의 별빛이 유난히 밝다. 맑고 냉랭한 날씨 때문일까, 별빛이 눈이 시릴 정도이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금방 수필문학 행사장에서 막을 내리고, 어두운 밤거리를 추적추적 걸었다. 요란하고 화려한 대학가를 피해 대로에서 한 블록 동네로 들어간 골목길을 걷고 걸었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이 앞을 가린다. 초여름, 내 생애 처음으로 중병을 만나 오랜 기간 투병하다 보니, 시나브로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 주야가 따로 없고 철이 없는 생활이다. 정상적인 배설에 제약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처럼 공기처럼 늘 곁에 있던 만상(萬象)이 새롭게 보인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그러하고, 새로 만나는 책들이 그러하고, 도시의 밤별이 그러하다.

나는 이미 반 년째 가족과 이웃들과 엇박자로 사는 기인이 됐다. 낮이 밤 같고 심야가 백주 같다. 병중이라 자연 누워서나 앉아서나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고로 노인은 과거에 젖어 살고 어린이는 미래에 산다더니, 나는 어느새 새 삶을 설계하고 내일을 계획하기 보다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즐거웠던 추억에 잠기는 경우가 잦아졌다. 막을 수 없이 세월은 흘러가고 나이는 낙엽처럼 켜켜이 쌓여 간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고!  한여름 모일 수술 직전에는 아이처럼 벌벌 떨었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욕심 덜 부리고, 음식 가려 먹으며, 더 선하게 더 열렬히 살고 싶었지. 가능한 한 맑은 공기를 찾아 피톤치드 풍부한 전나무 숲을 그리워했지. 무시로 시골의 그리운 시냇가 위를 수놓은 은하수와 초롱초롱한 성하(盛夏)의 별빛을 회상했었지. 까까머리 소년이 놀던 뒷동산을 오물오물 되새김질 했었지.

그로부터 수년 뒤 나는 국어시간에 알퐁스 도데를 만났었지. 프로방스 지방의 별밤을 이불삼아 나 닮은 목동과 주인집 스테파네트 아가씨와의 순수성과 서정성에 매료됐었지. 수채화 같은 목동의 별 이야기는 나의 하이틴 시절의 감성을 키워준 영양식이었지. 그 뒤 이태가 지났을까. 내가 천문항해술을 공부할 때 ‘해양명시집’을 통해 머나먼 나라, 아일랜드의 예이츠를 만난 건 순전히 운명적이었지. 귀거래사(歸去來辭)같은 ‘이니스프리의 호수의 섬’을 늘 그리워 한 예이츠는 지금도 내 안의 노스텔지어로 남아 있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집 짓고/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벌들이 윙윙 대는 숲속에 나 혼자 살으리/…/나 일어나 이제 가리/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소리 들리나니/ 한 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이재우 역> 

오늘처럼 대기가 청명한 도시의 밤하늘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촌놈이 된다.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한다. 북극성이나 샛별같이 눈에 익은 별들이 내려다보면 나는 어느새 유년시절로 날아간다. 긴긴 여름날 종일 소먹이고 오는 날에는 보급용 밀가루로 만든 어머니의 손수제비를 배부르게 먹고, 멍석 깔린 마당에 누워 찐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며 쏟아질 듯한 별무리 아래에서 동요를 부를 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눈부신 별빛만으로도 골목길을 밝히던 나의 사춘기엔 1등성보다 더 찬란한 꿈과 영광도 있었지. 

 나의 20대의 별 이야기는 유년보다 더 리얼하게 각인돼 있다. 새내기 항해사 시절, 항성(별)은 친구만큼 소중하고 반가운 삶의 도구요, 항해인생을 살아가는 방편이었다. 밤하늘의 별은 나와 동료, 선후배 그리고 전 승조원의 생명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 때때로 사이팅(Sighting 天測)을 하는 일몰시나 박명 무렵의 별빛은 궂은날 신출귀몰하는 태양보다 소중했다. 뭇별들은 항해 선박의 길잡이였기 때문이다. 천측은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해도, 여름철 아열대 해역에서는 Arctrus, Aldeberan, Capella, Deneb, Dubhe 등을 관측했고, 중위도 해역에서는 Altair, Sirius, Spica, Vega 등 1등성을 주로 즐겨 이용했다.    

요즘의 항해사들이 천측에 어느 정도 익숙해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전천후 항해장비인 인공위성항법 (NNSS) 이나 , 자동항해추적장치(GPS) 등에 적응해 있을 뿐 천측은 낡은 교과서가 아닐까 감히 추측을 해본다. 천체를 측정하는 섹스탄트(六分儀)는 더러는 항해도구 창고에서 구시대의 유물로 방치되거나 퇴물로 간주할지 모른다. 한때는 항해사들의 손에서 애지중지 반질반질하게 애용되던 법정구비 항해장비인데도. 며칠째 북대서양의 황천(荒天)을 추측항법(DR)으로 헤매다가 햇빛이라도 얄궂게 비치거나 저녁별을 만나면 갑자기 바빠지곤 했다. 항해사들이 브리지(조종실)에 다 모여 섹스탄트로 숨바꼭질하는 별을 수평선에 간신히 끌어내려 분주히 계산을 하고, 선위(船位)를 확인, 항로를 바로잡을 때의 감격은 일 년 만에 별리의 가족을 상봉하는 기쁨 같을까. 어렵사리 별을 따본 그런 날은 항해 당직을 마치고서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항해사들이 가끔 천문항법의 고갱이, 천측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학창시절에 첨단항해장비와 함께 익혔을 재래 항법은 의외로 매력 있는 과목이  아니었던가. 태양과 달을 관측하고 북극성과 수많은 항성을 천측하면서 얻는 감수성과 항해의 낭만을 그 무엇과 견줄 것인가. 디지털 시대의 항해사들도 지난 세기 한물간 섹스탄트의 향수와 낭만을 놓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년의 별빛이여, 바다 위의 불꽃이여! 엄마의 등에서 우러러본 별들의 꽃밭이 사모곡처럼 망부석(望夫石)처럼 그립다. 지천명(知天命)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철없게도 새삼 프로방스 지방 목동의 순수가 그리운 것은 이 순간에도 내가 늙어간다는 의미일까. 아,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
김동규(金東奎) 월간 해기 편집장 주요 약력

· 58년 경남 남지 生. 수필전문지《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 외항선 일등항해사. 동아대 대학원 언론학 석사.
· 현재 한국해기사협회《월간 海技》편집인. 《해양과 문학》편집위원.
· 부산문인협회, 한국해양문학가협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
.........................................................................
주소  : (601-839) 부산 동구 초량동 1212-7 해기사회관 5층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