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金鍾吉 본지 논설위원
jkihm@hanmail.net

'榮譽로운 海運人들'이란 코너를 통해 매주 해운발전에 공헌한 숨은 주역들을 찾아내 소개해 주시고 계신 김종길 전 부산해운항만청장(본지 논설위원)님이 최근 새로운 대통령 선출과 관련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정부기구 축소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셨다.
보내주신 내용을 전재한다.-전문-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어 일부 국민은 불만과 불안이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 이유는 진보와 보수, 그리고 이념을 뛰어넘어 실사구시의 정책을 펴서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당선자는 정부기구와 규제는 줄이고 기업의 창의적 활동영역은 넓혀야 한다는 기본철학을 갖고 있다고들 한다. 대통령취임 초입에 정부기구를 손질을 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기 때문에 전광석화처럼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급물살에 해양수산부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

  1955년 2월에 해운‧ 수산‧ 항만‧ 조선‧ 해양결찰 등 해사행정을 총괄하는   해무청이 창설되었다. 당초 정부조직법을 개정할 때 대한민국이 부강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해양입국을 지향해야 한다는 애국충정으로 국회에 해무부  설치안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해무부 안이 155 대 72로 부결되어 해무청이 발족되었다. 5.16혁명정부가 해운은 교통부, 수산은 농림부, 항만건설은 건설부, 조선은 상공부, 그리고 해양경찰은 내무부로 각각 편입시켜 해무청은 공중분해 됐다.

  해체 동기는 이각순 해무청장이 평화선 고수를 강력히 주장하는데서 연유되었다. 혁명정부가 정권을 공고히 다지려면 경제개발이 최우선인데 이를 위해서 대일청구권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평화선 고수를 높이 주창하면 일본을 자극하여 한일교섭에 재를 뿌린다고 우려했다. 경륜은 없고 의욕만 넘치는 혁명주체들이 멀리바라보지 못하고 발등에 불만 끄려는 단견으로 이각순을 질타하며 해무청을 해체해버렸다. 해무청 해체로 반사이익을 보는 정부부처가 많았던 것도 해무청 해체를 촉진시켰을 것이다. 

  해무청 해체는 교통, 농림수산, 상공, 치안 등의 행정일원화와 효율을 기할 수 있었겠으나 반대로 해사행정은 중심을 잃고 동력을 상실했다. 그 실례로 교통부에서 해운국은 육상교통에 파묻혀 버렸다. 교통장관은 육상교통에 매달려 해운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유는 철도 버스 택시 등 육상교통은 국민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서비스문제나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국민여론이 비등하여 장관의 진퇴가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운은 소수 국민들로 한정되어있고 또한 바다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장관의 관심밖에 머물러 있었다. 대형 여객선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정책을 개발하기보다 빤작 쇼로 끝날 뿐이었다.

  해운은 바다와 선박과 선원을 전제로 한 특수전문행정이다. 그러나 철도 등 해운과 전연 관련 없는 공무원들이 해운행정을 좌지우지하게 되어 해운행정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전문성이 없으니 비전이 없고 비전이 없으니 책상에 앉아 민원서류가 접수되면 규정만 따지며 까탈을 부리니 거기에 부조리와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선박확보가 부진하여 경제개발계획에 의해 늘어나는 수출입화물의 수송을 외국선박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외국선박대리점이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물론 IBRD의 권고도 있었지만 해무청을 폐지했던 박정희대통령은 1976년에 해운항만청을 발족시켰다. 교통부 해운국으론 해운항만정책을 실효성 있게 수립하고 집행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해운항만청에 내려준 휘호『四海躍進』은 해운을 진흥시켜 대한민국이 만천하로 뻗어나가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다. 강창성 초대 해운항만청장은 四海躍進이란 슬로건을 높이 들고『自國貨自國船』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해운회사통폐합이란 홍역을 겪었지만, 그래도 오늘날 세계8위의 해운국가로 부상하는 기틀을 구축했다.   

  해운항만청이 수산청과 해양경찰청과 합병하여 해양수산부가 되었다. 바다와 육지란 2분법에 의한 정부조직이 불합리하다는 논리로 해양수산부의 존폐가 논의되어 왔다. 특히 김대중정부 출범 당시에도 해양수산부 폐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전임 대통령의 건의로 유보된 사례도 있다.

  해양수산부의 존폐는 Sea Power란 상징성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서양사에서 보면, 카르타고가 기원전 600년경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하고서 지중해무역을 독점했다. 즉 지중해 Sea Power를 손아귀에 넣은 카르타고가 아프리카와 유럽을 석권했다. BC 150년경 카르타고가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배하여 지중해 제해권을 로마에 넘겨주었다. 지중해 Sea Power를 장악한 로마가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다.

  영국은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위세에 눌려 대양(大洋)으로 출범하지 못한 후진국이었다. 해군제도의 창시자라고 하는 헨리8세가 1509년에 헨리7세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았다. 헨리8세는 절대군주의 권력으로 조선창을 설치하고 조선업을 진흥시켜 전투용 상비함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상비함대의 호송을 받으며 영국 상선이 역동적으로 세계무역을 주도했다. 이런 여세를 몰아 엘리자베스1세는 1588년에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5대양을 제패했다. 5대양 6대주에 유니언잭이 휘날리어 해질 날이 없는 대영제국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영국이 산업혁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도 광활한  식민지시장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명나라 환관 정화는 1405년에 317척의 대선단에 승조원 2만7천명을 이끌고 인도, 페르시아, 아프리카 동안까지 원양항해를 시작하여 30년간 계속하며 Sea Power를 과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정에서 이를 말살시켜 결국 중국이 서양세력의 지배에 들어갔었다. 콜럼버스나 마젤란이 겨우 3~5척의 선단에 승조원 120명~265명을 싣고 신대륙을 발견하였던 때보다 100년전 이었다.

  오랜 쇄국정책으로 낙후된 일본은, 명치정권이 1870년 상선규칙을 제정하고 선구형기선을 도입‧건조하며 해운‧조선 진흥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면사방적과 기계‧철강공업을 발전시켜 대외무역이 급속히 성장해가며 자본주의  경제토대를 구축했다. 그 여세를 몰아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아세아를 석권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으나 패전의 쓴잔을 마셨다. 처참한 패전의 폐허 속에서도 축적된 일본인의 저력에 의하여 세게 제1의 해운국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한반도는 대륙에 젓꼭지처럼 붙어있어 Land Power와 Sea Power가 부딪히며 수난을 당해왔다. 三國鼎立時代에는 신라의 최고위층 김춘추와 김유신이 배편으로 친히 당나라를 드나들었고, 장보고가 동지나해를 장악하고 페르시아까지 항해할 정도로 Sea Power가 대단했다. 이런 신라는 당나라와 나당연합군을 결성하여 광대한 고구려를 패망시킨 해양세력이었다.   

  고려조에는 원나라가 7차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여 인명 재산 문화재를 초토화시켰고, 거기에다 일본을 정벌하려고 고려를 강압적으로 끌어드렸다. 조선조에는 더욱 심했다.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까지 몽진을 했으나, 충무공이 해전(海戰)으로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해냈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했으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례(降禮)함으로써 끝났으나 세자와 빈궁은 인질이 되었다. 1894년 동학혁명을 평정하기 위해 조선조정이 청‧일 군대를 끄려드렸다가 청일전쟁이 촉발되어, 결국 일본의 강점으로 조선조 500년의 종말을 고했다.

  일본의 패전으로 광복되었으나, 한반도는 분단되어 6.25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한반도에 미국의 Sea Power와 중국의 Land Power가 맞부딪쳤다. 첨단 제트기와 원시적인 인해전술이 한반도에서 불꽃을 튀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남한은 해양세력으로, 북한은 대륙세력으로 굳혀갔다. 개방된 해양세력은 번영, 폐쇄된 대륙세력은 빈곤이었다. 참으로 묘하다. 서울에 88올림픽이 열렸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도 84년 LA올림픽도 반쪽이었는데, 동서냉전이 격돌하고 있는 서울올림픽은 동서화합의 한 마당이 되었다. 전쟁의 잿더미를 밟고 30년 만에 산업혁명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기적을 확인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한국의 산업혁명 뒤에는, 컨테이너선‧ 자동차전용선‧ LNG선 등 첨단선박들과 VLCC‧ 광석선‧ 양곡선 등 초대형선박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5대양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산항과 인천항 등이 있었다. 영국은 주인 없는 땅을 찾아서 지배했다. 지금은 주인 없는 땅이 없다. 그러나 주인 없는 바다는 얼마든지 있다. 그 바다에는 석유 가스 고체가스 등 수 많은 자원이 있다. 국가부채 300조원을 어떻게 갚아갈 것인가? 우리는 그 자원을 개발해야만 후손들이 먹고 살 수 있다. 수출입화물의 운송과 해양자원의 개발을 위한 종합부처가 꼭 있어야한다. 그것은 조선(造船)을 포함한 해양수산부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이 Sea Power 국가라는 상징성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해양수산부는 꼭 존속하여야 한다.
☞그 옛날 누군가가 <바다를 제패한 자 세계를 제패한다.>라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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