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호(한일상선 대표)

매년 새해에 수필을 주시고 계신 김문호 한일상선 대표이사님이 올해에도 ‘알렉산더’란 제목의 수필을 주셨다. 동내용을 전재한다.-전문-


 제 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나고 10년쯤 뒤, 그 전쟁의 두 주역이 로도스 섬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승자의 영광으로 이탈리아누스의 칭호를 받고 로마 원로원의 제1인자가 된 스키피오와, 패전의 책임을 피해 시리아로 망명해 온 카르타고의 한니발이었다. 열두 살 아래인 스키피오가 정중하게 물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요. 그는 소규모의 군대로 페르시아 대군을 무찔렀을 뿐만 아니라, 상상의 한계를 넘어선 지방까지 정복한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 아니 할 수 없소."

 알렉산더는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넘어선 지 8년 만에 파르티아, 마르기아나, 아라코시아, 박트리아, 소그라니아, 페르시아 등 당시의 페르시아 세력권 전부를 장악해 버렸다. 에게 해에서 인더스 강까지 동서 4천 킬로미터, 호르무즈에서 카스피 해까지 남북 2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이었다. 실로 눈부신 전과였다. 더구나 그의 상대는 그보다 열 배가 넘는 대군과 막대한 군비를 비축한 막강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3세였다.

 알렉산더의 쾌거는 유사 이래 수세에 몰려 있던 그리스 세력의 첫 동방 반격이자 완벽한 승리였다. 세기 반 전의 살라미스, 마라톤의 승전이 그들의 자존심이긴 했지만, 그것은 자기들 영역 내에서의 방어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원정 이야기는 신화처럼, 전설처럼 풍성하게 전한다. 고르디언의 매듭(Gordian knot) 얘기가 그 하나이다. 난마처럼 뒤얽혀 있는 매듭타래를 그야말로 일도난마해 버리고 그가 외쳤다.

 "매듭은 풀렸도다."
 그러자 그의 비범한 기백과 명쾌한 예지 앞에 프리기아의 성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는 다리우스 왕과의 첫 회전에서 맹수 같은 용맹으로 그의 열 배가 넘는 대군을 무너뜨리고 다리우스의 어머니와 왕비, 두 공주와 왕자를 사로잡았다. 자신의 무릎 아래 꿇어 앉아서 최소한의 자비만을 애걸하는 다리우스의 어머니 시시감비스를 일으켜 세우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 안심하십시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여인들을 존경합니다."
 당시의 전쟁관례에는 여자와 재물이 일차적 노획물로 용인되어 있었지만 알렉산더는 원수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면서 존경을 맹세했던 것이었다. 이에 대한 소문이 충격으로 퍼지면서 페르시아 군대의 전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가족과 재산이 안전할 수 있다면 목숨 걸고 항전할 이치는 아니었다. 어차피 이민족인 다리우스의 압제가 차라리 더 가혹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가우가멜라에서 벌어진 회심의 2차전마저 어처구니없게 패한 뒤, 제국의 북동쪽 산악지대에서 3차 회전을 준비하던 다리우스는 반역한 신하들의 손에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신하들이 자기들 왕의 목을 담보로 포상을 흥정해 왔다. 그는 단호한 한 마디로 그들의 제의를 물리쳤다.

 "왕만이 왕을 죽일 수 있다."
 그리고는 반역자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페르시아 왕권의 이름으로 처단해 버렸다. 이제 그는 다리우스의 사위가 되면서 페르시아 왕위의 계승자가 되었다. 왕권의 찬탈자가 아니라 수호자로서였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왕자로 태어나면서부터 명성 높은 스승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자랐다. 스승들은 그의 신체를 야수처럼 강인하게 단련시킨 다음에 에우리피데스, 호머의 문학과 자연과학을 교육시켰다. 그러고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사사하여 철학과 정치학을 습득케 했다.

 스무 살에 왕좌에 오른 그는, 2년 만에 전 그리스의 맹주권을 확보하여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다. 스물 두 살의 당당한 체구에는 지칠 줄 모르는 강인성이 배어 있었고 수려한 용모에는 명예와 모험을 사랑하는 기백과 예지가 넘쳐흘렀다.

 그의 목표는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의 영역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교역이 실핏줄처럼 교류하는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그의 포부였다. 그것은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조카까지 딸려 보내면서 격려 해 준, 전 그리스 세계의 꿈이기도 했다.

 이제 그의 앞에는 인도 대륙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인더스를 따라서 올라갔다가 간지스의 하구로 내려서면 칼커타가 반환점이 될 것이었다. 아라비아 반도를 징검다리 삼아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그곳의 카르타고를 평정하고 지중해를 북상해서 로마를 정리한 다음, 서쪽에서 그리스로 귀환하는 것이 그의 행군 청사진이었다. 그러고 나면 그의 전 행군 궤적이 새로 태어날 제국의 울타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인도의 접경지대로 들어섰다. 그러나 인도는 지금껏 겪어왔던 페르시아와 같지 않았다. 간다라 지방에서 유독 맹렬하게 저항하던 포로스 왕을 어렵게 격파하고 나서 항복을 받기 위해 왕의 궁전을 들어섰을 때였다. 바닥에 꿇어앉아 처분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포로스가 용상에 드높이 앉은 채 알렉산더의 일행을 굽어보고 있었다. 잠시 혼란에 빠졌던 승자가 태연을 회복하고 나서 물었다.
 "어떤 대우를 바라는가?"
 패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바로 뒤 따랐다.
 "왕으로 대해 주길 바라노라."
 신하들까지 도열시킨 채 찬연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7척 거구의 위용에는 티끌만 한 동요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승자도 망설이지 않았다.
 "좋다. 너는 왕이다."

 인도와 페르시아 중간에 우호적인 독립 왕국 하나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민첩한 판단이었으리라. 아니면 진정한 용기가 또 다른 기백을 알아보는 찬탄 같은 것이었을까?
 그는 인더스를 건넜다. 주민들의 표정이 무심한 듯 태연하기만 했다. 길 옆 진흙밭에 상체를 벗은 노인 하나가 괴상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부관을 보내어 알아 오게 했다. 부관이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누구이며 무엇 하는 자인가?"
 노인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너의 주인은 어리석도다. 나는 수십 년을 이렇게 앉아서 생각해 봐도 내가 누구인 줄 모르겠거늘, 그는 그렇게도 쉽게 알려 하다니…"

 그는 전도의 심각성을 예감하고 그 마을에 진을 치기로 했다. 인더스의 지류에 제방 쌓는 작업을 벌였다. 어지러운 물줄기를 바로잡고 갯벌을 농지로 개간하려는 계획이었다. 주민들은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잘 따랐다. 그리스 과학 문명의 위력으로 미개 인도를 감응시키려는 그의 전략이 적중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는 놀라운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제법 높게 쌓아올려졌던 제방이 밤 사이에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주민 대표들을 다그쳤다.
 "너희들이 쌓은 둑을 너희들의 손으로 허물 수가 있는가?"
 "낮에는 당신의 뜻으로 쌓았지만 밤에는 우리들의 판단으로 없앴습니다."
 "자연을 다스려 인간의 복리를 구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은가?"
 "한 인간의 생애만으로 볼 때는 그렇게도 보이겠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것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유익합니다."
 알렉산더의 뇌리에 현기증이 감돌았다. 인도는 바로 인더스의 갯벌이었다. 쉽게 움켜잡을 수는 있어도 손 안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다리우수의 철옹성보다, 아프칸의 얼음 절벽보다 훨씬 가혹한, 차라리 절망에 가까운 장벽이었다.
 열 명의 학자들을 불러 놓고 한 사람씩 그의 질문에 대답하게 했다. 틀린 대답에는 가차 없는 죽음이 내려진다는 약속 하에서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희랍 지성의 예봉으로 천년 묵은 힌두의 둔탁한 방패를 뚫어 보려는 시도였다.

 "산 자가 많은가, 죽은 자가 많은가?"
 "산 자가 많습니다. 죽은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짐승은 뭍에 사는가, 물에 사는가?"
 "뭍입니다. 물은 뭍에 포함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교활한 짐승은 무엇인가?"
 "아직도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있는 놈입니다."
 "왜 주민들을 선동하여 반항하게 하는가?"
 "고상하게 살고 고결하게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낮과 밤은 어느 쪽이 먼저인가?"
 "낮이 하루 앞섭니다."
 "무슨 뜻이냐?"
 "답이 없는 질문에는 모든 것이 답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가?"
 "힘이 있으되 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신이 될 수 있는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야 합니다."
 "삶과 죽음 중 어느 것이 강한가?"
 "삶은 죽음의 고통을 이깁니다."
 "몇 살까지 사는 것이 적당한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구차할 때까지입니다."
 마지막 한 명이 남아 있었다.
 "판결하라. 누구를 죽여야 하는가?"
 "아홉 대답의 합은 각각의 대답보다 못합니다."

 그는 인더스 상류에 몇 개의 알렉산드리아와 신전을 세운 뒤 바빌론으로 돌아가 3년 만에 죽었다. 그는 왜 인도를 포기하고 돌아선 것일까? 8년 동안 2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부하들의 피로와 향수병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유럽의 자존심으로 숭앙하려는 로마인들의 기술일 따름이다. "모든 것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유익하다."는 인도 농부의 경구를 떨쳐버릴 수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위대한 제국에의 야망조차 부질없음이었으리라.

 그의 죽음은 말라리아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또한 그들의 기록일 뿐이다. 맹수처럼 강인한 왕의 33세가 채 못 된 요절이다. 실은 알코올중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후세의 나폴레옹은, 그를 위대한 전사인 동시에 탁월한 입법자였다고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영광의 절정에서 미쳤거나 타락해 버렸다."고 했다.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관이 소멸된 빈 자리는 철저한 절망만으로 채워지는가? 그러나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털어 버리는 것, 그것은 해탈의 모습이리라.
 그가 숨을 거둘 때였다. 신하가 유언을 청했다.
 "대왕이시어, 당신의 광활한 영토는 누구에게 넘기시렵니까?"
 대답은 언제나처럼 간단명료했다.
 "내겐 한 치의 땅도 없노라."
 그에게는 땅이 없었다. 모든 영토는 남으로부터 빼앗은 것,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빼앗길 것뿐이었다. 자신의 여섯 자 시신이나마 안전하게 뉘일 땅이 그에게는 없었다. 신하가 고쳐 물었다.
 "대왕이시어, 당신의 제국은 누구에게 맡기시렵니까?"
 "가장 강한 자에게."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제국이 맹세나 약속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위대한 전사요 탁월한 입법자인 동시에 투철한 철학의 지성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0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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