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이 일궈낸 성과 소중히 지키기를

한일항로에 지난해 11월 1일부터 실링제도가 도입되면서 운임이 상당폭 올라 선사들이 시름을 덜게 됐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갑기만 하다. 그동안 한일항로 선사들은 운임하락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왔으며 더구나 유가의 인상과 엔화와 달러화의 약세, 용선료의 인상등으로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제는 1980년대 중반처럼 선사간에 통폐합이라도 해야한다는 절박한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구원투수인 실링제도를 만났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운임의 상승은 하주들에게는 커더란 불만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수출경쟁력이 없어서 못해 먹겠는데 물류비마저 자꾸 올라가면 어쩌란 말이냐 하고 하소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한일항로에만 전념하여 대일 수출입의 가교역할을 해왔던 국적선사들의 공로를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이 국적선사들이 없었을 때 얼마나 불편했을까를 생각할 수 있다면 선사들의 운임인상은 ‘살기위한 몸부림’ 정도로 봐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포워딩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선사들의 횡포 아니냐는 시각보다는 ‘함께 살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시각에서 선사들의 움직임을 이해해 줘야 할 것이다. 그만큼 국적선사들의 입장이 근자에 극한상황에 몰려 있었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한일항로 선사들의 위기는 결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FTA, WTO로 대표되는 무한경쟁시대에 한일항로만 어떻게 풀링시스템을 고집하며 독야청청 할 수 있을까 하는 잘못된 생각, 어떤 상황에서든 나만 조금 더 실으면 된다는 탐욕, 밑도 끝도 없는 경쟁심 등이 선사들간의 결속력을 와해시키고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때문에 사실 실링제도건 풀링제도건 제대로 성공하려면 이러한 내부적인 갈등요인이 완전히 사라져야만 한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실링제도가 시행초기이니까 서로 질서를 지키며 잘 이행되는 듯 하다가도 실제로 정산단계가 되면 이해득실 때문에 대판 싸움을 하는 사태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런 우려는 8년전인 지난 2000년말 한일항로 선사들이 어떤 혼란상황을 연출했는가를 떠올리면 전혀 근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에 한근협 멤버선사 가운데 모선사는 풀제 불참을 선언했고 모 대형선사는 협의회의 감사를 거부했으며 어떤 선사는 너무나 많은 페널티를 낸다고 탈회 선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소형선사들보다도 대형선사들이 더 불만을 얘기하고 풀링시스템을 깨는데 앞장들을 섰다. 이번에는 실링제도에 동참한 선사들 모두가 합의한 것이므로 이러한 대의를 거스르고 반발하는 선사들이 나와서는 안될 것이다.

  대체로 많은 해운전문가들도 정기선항로의 차별없는 개방을 얘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최근 한일항로에서 국적선사들이 성과를 일궈낸 점에 대해서는 비난을 할 수 있는 논리를 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기선항로라는 것은 원론적으로 무조건적인 개방과 무원칙한 정책으로 다룰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정해진 구간과 구간을 운항하고 정시성이라는 규율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규율과 규약이 필요하고 그런 차원에서는 정기선해운 정책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측면에서 따지면 한중항로의 개방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아직 한일항로의 국적선사 실링시스템이 정착된 것이라고 하기엔 이르지만, 한중항로가 2009년도에 개방을 하더라도 무조건적인 개방이 아니라 한일항로의 예를 따라가는 효율적인 개방이기를 우리는 바란다. 중국선사가 많은 한중항로에서 실링시스템을 도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든 취항선사들간에 강한 연대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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