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종희 KMI선임연구위원
해양수산부가 또다시 존폐의 기로에 섰다. 언론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해양수산부 폐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바다 관련 종사자들은 해양수산부 존속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 이유는 해양수산부 존재 자체가 해양인의 자긍심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과거 해양인이 우리의 역사 무대에 등장한 것은 매우 드물다. 장보고 대사와 이순신 장군이 종종 역사적 해양 인물로 거론된다. 그렇지만 일반인은 이 두 사람을 해양인으로 보지 않는다. 해양인이란 그저 천한 뱃놈이라는 생각에서다.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사람도 최근까지 이런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해양인에 대한 우리의 낮은 인식에 대해 상당수 학자는 동아시아의 대륙 지향적 문화에 그 탓을 돌린다. 이 주장은 우리나라가 중국에 인접한 반도국가로서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것이 국내 해양인에 대한 낮은 인식을 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해양인에 대한 인식은 바다의 생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해양인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 차가 크다. 서양은 일찍부터 바다를 부의 원천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서양에선 육지보다 바다에 종사하는 사람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 점은 선장(Captain)이라는 호칭에 대한 선호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즉 서양에선 장관보다 선장이라는 호칭이 더 선호된다.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선장은 예나 지금이나 기피 대상 호칭이다. 이는 국내 해양인 전체가 도매금으로 비하되고 있다는 증거다. 한편 이런 비하는 전통적으로 우리 바다의 낮은 생산성과 해양을 한계 일터로 간주하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실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바다는 고기 잡는 어장에 불과했다. 또한 해양부문이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1994년 「UN해양법」이 발효되면서 해양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협약이 시사하는바 해양을 육상자원 고갈에 대비한 자원, 에너지, 식량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신산업의 보고로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협약에 따른 바다 분할이 한 몫을 한다. 우리나라도 협약에 의거 이제 육지면적의 4.5배에 해당하는 넓은 해양영토를 갖게 됐다.

해양영토 확장은 해상 활동무대를 확대하고 더불어 해양경제활동의 증가를 수반한다. 기존의 선박항행과 어업은 물론이고 양식어업 및 유통가공, 해상관광, 해상비행, 해양과학조사, 조선 및 해양기자재 산업발달, 심해자원개발, 인공섬건설 및 구조물설치, 해저케이블설치, 폐기물 해양투기, 그리고 해양의 군사적 이용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추가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해양경제활동의 증가는 바다가 한계 일터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할 무대임을 의미한다.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가 바로 이러한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1996년 출범한 것이다.

그간 해양수산부는 이런 출범목적에 충실히 부응해 왔다. 결과적으로 해양 분야에 대한 인력진출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해양인의 자긍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자긍심은 상당수 대학들이 해양관련 학과를 증설하고 있는 데서 자명하다. 그리고 관련 학과에서 수학하는 많은 학생과 해양산업으로의 신규진출 인력의 존재는 우리 바다가 더 이상 한계 일터가 아님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해양수산부 존폐논의가 해양인의 자긍심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우리 해양인은 해양수산부 존속에 대한 희망을 결코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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