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대한민국, 통합해양행정체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 해양수산부 김연빈 사무관
최근 해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첫째는 여수가 2012년 세계박람회(EXPO) 개최지로 결정된 것이다. 여수는 아프리카에서도 박람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모로코의 감성적 호소와 이에 동조하는 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국가의 지지에 막바지까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개최지로 결정되었다. 여수의 박람회 유치 성공에는 민․관․재․정의 뛰어난 역할분담과 협력, 그리고 적극적인 외교노력이 큰 몫을 했지만, 결정적인 성공요인은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nd Coast)"이라는 적절한 주제 선정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투발루나 통가와 같은 태평양의 섬나라들은 언제 수몰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여수의 세계박람회 유치 성공은,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인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바다와, 인류가 직면한 식량과 자원, 환경 문제의 대안으로서 해양이 갖는 무한한 가치에 대해 전 세계의 공감을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로 인하여 일시에 태안 앞바다가 검은 바다로 변한 것이다. 천혜의 어장과 절경의 해안은 원유로 오염되고, 바닷새와 조개들은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어갔다. 바다를 생계터전으로 해온 어업인들은 일시에 생활터전을 잃었다. 5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로 해수욕장과 갯바위의 오염은 많이 제거되었지만, 이 지역이 원상태를 회복하기에는 10년이상이 걸릴 지도 모른다. 이번 사고는 우리의 삶의 터전인 푸른 바다가 인간의 한 순간의 부주의나 안전의식 결여로 인해 일시에 죽음의 바다로 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는 우리나라 해양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마침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부처주의 조직개편과 맞물려 해양행정체제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12년 전 통합해양행정을 기치로 발족한 해양수산부는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성공과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시프린스호 사고에 대한 교훈을 살리지 못하고,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매뉴얼을 갖추지 못하고, 사건을 낙관하여 초동대처를 소홀히 하고, 방제 등 후속조치에도 체계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해양행정 당국의 책임은 준엄히 규명되고 엄중히 문책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통합해양행정체제를 부정하고 이를 해체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태안의 바다는 원래대로 돌아오겠지만, 해양정책의 후퇴를 초래하게 될 통합해양행정체제 훼손으로 인한 폐해와 영향은 국가의 존망과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기원 전 지중해를 제패한 카르타고는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하여 지중해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유럽의 변방 스페인은 대항해시대를 열어 포르투갈과 함께 세계의 바다를 양분했다.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5대양을 제패하여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마한(A. T. Mahan)의 건의로 막강한 해양력(Sea Power)을 갖춘 미국이 지금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세계에 군림하고 있다.

이미 1600년대 초에 두 번에 걸쳐 해상을 통해 유럽사절단을 파견한 일본은, 이후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의 쇄국령(1633년)과 대선조선금지령(1635년)에 의해 한 때 해상활동이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은밀한 밀무역을 통해 부와 기술을 축적하여 페리의 흑선(黑船)이 내항한 이듬해인 1854년에는 이미 자체적으로 최초의 서양식 선박을  건조하였고, 1860년에는 일본인이 운항하는 '칸린마루(咸臨丸)'라는 선박이 태평양을 횡단했다. 참고로 태극기를 단 선박이 처음으로 태평양을 횡단한 것은 약 100년 후인 1952년의 고려호이다. 일본은 이후 해군력을 강화하고 조선공업을 진흥하여 이를 바탕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한 때는 남양군도를 제패하고 아시아를 석권했다.

흔히 대륙국가라고 생각하기 쉬운 중국도 해양대국이었다. 명나라의 환관 정화(鄭和)는 200척 이상의 선박과 2만5천명이 넘는 승무원을 이끌고,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멀리 인도, 동아프리카까지 대항해를 하여 조공무역을 확대하였다. 정화의 함대는 보선(寶船)이라 불리는 9개의 돛을 갖춘 길이 100미터 정도의 대형선이 60척, 그 주위에 배치된 100척 이상의 소형선으로 이루어졌다. 전문가에 의하면 보선은 배수량 3,100톤으로 추정되며, 격벽으로 선창을 구분하여 침수와 화재에 대처하는 등 구조적으로도 뛰어났다. 정화의 1차 원정으로부터 약 90년 후인 1492년 신대륙 탐험에 나선 콜럼버스의 항해는 3척의 선박과 120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되었으며, 기함 산타마리아호는 250톤으로 보선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명의 대항해는 계속되지 못했다. 원양항해는 금지되고 두 개 이상의 돛을 가진 선박은 폐기되었다. 그 결과, 중국은 내륙국가로 전락하여 마침내 서구세력에게 홍콩을 할양하고, 신흥세력 일본에게 대만을 떼어주는 수모를 당했다.

일찍이 청해진을 개설하여 동북아 해상교통을 장악한 장보고의 신라와, 아랍상인들까지 찾아와 국제무역시장으로 번성한 벽란도의 고려 이후, 바다를 멀리하고 문약에 빠진 조선은 두 차례에 걸친 왜란 끝에 마침내 국권을 빼앗겼다. 왜구의 침탈을 두려워하여 섬지역으로부터 주민을 철수시킨 이른바 공도정책(空島政策)은 오늘날까지도 독도 영유권 문제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왕년의 해양강국 중국은 21세기를 맞아 다시 한번 해양국가로서의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정화의 첫 항해 600주년을 맞은 2005년, 중국은 인민대회당에서 대대적인 기념식을 갖고 적극적인 해양정책을 전개할 것을 천명했다. 또한, 20여개 부처에 흩어져 있는 해양관련 행정조직을 통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일본은 2007년 7월 수상을 본부장으로 하는 종합해양정책본부를 설치하고 해양정책담당 장관을 임명하여, 해양행정을 종합적이고 일원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우리나라는 독립 이후 3면이 바다로 열린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한 수출주도형 압축성장으로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의 해운력, 조선력, 수산력, 해양과학기술력 등 해양력이 글로벌 경쟁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의 해양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해양력을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통합적인 해양행정체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부러워하고 중국도 모방하려고 하는 우리의 앞서가는 브랜드상품 통합해양행정체제를 비판하고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해양을 둘러싼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히려 우리의 통합해양행정체제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이번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로 전면에 부각한 유조선의 단일선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조선행정을 통합해양행정체제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또한 기상행정도 통합해양행정체제에 포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 사고뿐만 아니라 해마다 우리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 태풍 등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기상 문제는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공우주분야가 가세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항공은 해운항만과 맥락을 같이하고, 우주는 항공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하천이나 운하를 운항하는 선박의 운항관리․항행안전 등에 관한 문제 등도 당연히 해양수산부의 몫이다.

폴 케네디는 21세기를 해양의 세기라고 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1세기 제3의 물결을 주도할 4개 핵심사항으로 해양개발, 정보통신, 우주개발, 생명공학을 제시하고, 인간의 미래는 바다에 달려있다고 갈파했다. 우리는 2016년까지 세계 5대 해양강국으로 도약하여 4만불 국민소득 시대를 해양부문이 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통합해양행정체제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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