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淙熙/KMI선임연구위원

▲ 강종희 KMI 선임연구원
해운시장이 심상치 않다. 이럴 때일수록 해운의 시장실패에 유념해야 한다. 그간 고공 행진을 거듭해온 벌크선운임지수(BDI)가 연초로 접어들어 폭락세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현재 BDI는 6000포인트를 하회하고 있다. 이 수치는 지난해 11월 최대치의 절반 수준에 가깝다. 11월 당시 BDI는 사상 처음 1만 1039를 기록했다.

관련 전문기관들은 최근 해운경기 하락에 대해 그 원인을 대체로 수급불균형에서 찾고 있다. 즉 계절적인 수요 감소로 말미암아 운임이 하락한다는 논리다. 또한 중국의 춘절 연휴와 브라질의 철광석 수출 터미널 파손이 겹쳐 수급이 더욱 악화됐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업계는 시간이 지나 3월 하순이나 4월 초가 되면 수급불안이 해소돼 시황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낙관론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해운시장이 가격조절 메커니즘을 통해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정상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상시장에서는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오른다. 이 때 수요와 가격은 陽의 인과관계다. 거꾸로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하므로 이 경우 가격과 수요 사이에 陰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이처럼 두 변수 사이 음과 양의 인과관계를 동시에 가진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는 시장에선 가격이 요동치는 소위 시장의 실패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해운에서는 시장의 실패가 쉽게 목격된다.

해운시장의 실패는 수요와 공급 두 부문에서 발생한다. 먼저 해운의 수요부문을 보면 증권이나 부동산 시장에서와 같이 가격과 수요 사이에 종종 음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대신 양의 인과관계를 보인다. 즉 해상운임이 오르면 선박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다. 따라서 운임이 오르면 선박을 확보하기 위해 선박 수요자들이 일시에 몰려들고 이로 인해 해상운임이 올라간다. 결국 선박에 대한 투기수요가 발생하게 돼 순식간에 해상운임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실제 지난 해 해운 호황은 상당 부분 이런 투기수요에 기인한바 적지 않다.

다음으로 해운은 공급부문에서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에 노출돼 있다. 예컨대 해상운임이 오르면 선박회사는 너도나도 선박을 조기에 확보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중고선 가격이 급격히 올라간다. 결국 중고선을 확보하지 못한 선박회사들이 신조선으로 몰리고 이에 따라 대량의 선박발주가 이뤄진다. 그런데 선박건조에는 시간이 걸린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수년이 소요된다. 이 사이 투기적 수요가 진정되고 운임이 하락한다. 아울러 호황 시 발주한 선박이 대량으로 시장에 유입하면서 운임이 더욱 폭락하게 된다. 이로 인해 뒤 늦게 시장에 뛰어든 선사는 비극적인 수렁에 빠진다.

결국 해운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부문 모두에서 시장의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장 참여자는 당면한 시장의 실패가 어느 부문에서 초래된 것인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만약 수요부문에서 시장의 실패가 발생한 것이라면 이 부문에 대한 대책을 찾아야 하고 반대로 공급부문에 의한 시장의 실패라면 공급측면에 집중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해운시장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운은 시장의 수급상황이 아니라 시장의 실패에 대한 대처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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