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희 법무법인 정동국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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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기금이 보상하는 이유

▲ 서동희 정동국제 대표변호사.
통상적으로 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이 있는 당사자가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였을 때 그 손해에 대하여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사법의 영역에서도 무과실책임이 있기도 하다. 즉, 과실이 없더라도 특수한 경우, 예를 들면 원자력사업자가 원자로의 운전 등으로 인하여 제3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에 그 원자력사업자는 과실 유무를 불문하고 제3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위험을 스스로 만들어 낸 사업자가 그 위험성이 있는 사업을 통하여 수익을 얻는 것에 대하여 무과실책임을 지우는 것이 공평하다는 견해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1992년 유류오염손해에 대한 민사책임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Civil Liability for Oil Pollution Damage, 1992, '1992 CLC')도 이러한 무과실 책임, 즉 strict liability의 원칙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기금은 어떠한 측면으로 보더라도 유류오염의 야기에 기여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국제기금에게 갹출금을 납부하는 정유회사들도 마찬가지로 통상적인 민사손해배상법리로 이해하기 어렵다.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위법행위와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할 것인데, 국제기금이나 정유회사의 유류 취급행위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손해를 야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금은 유류오염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여 주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하여 보기로 하자.

이러한 보상체계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3월 18일 유조선 Torrey Canyon호**가 영국 남서 해안의 산호초에 좌초하여 운송 중이던 원유 약 12만톤이 영국 해안 및 프랑스 해안을 오염시킨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이전에도 유류오염 피해에 대한 대처는 논의되고 있었기는 하나, Torrey Canyon호 사고는 유류오염 피해에 대한 논의를 대폭 앞당기고 가속시키게 되었다. 공법 분야로는 연안국이 유류오염 사고에 대하여 전통적인 국제법의 원칙에서 인정하는 이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는 소위 Intervention Convention이 성립되었으며, 사법 분야로는 배상 및 보상의 수준을 높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손해의 배상 및 보상과 관련하여 유엔산하 국제해사기구(IMCO)의 주도 아래에 국제회의가 열리게 되어 여러 나라의 대표가 Torrey Canyon호 사고가 가지고 온 여러 가지 법률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게 되었다.

여기서 가장 주된 문제는 누가 오염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배상책임의 원칙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배상책임의 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었다. 이러한 논의 끝에 1969년 11월 29일 유류오염 손해에 대한 민사책임에 관한 국제협약('1969 CLC')이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1969 CLC는 위 세 가지 문제에 관하여 배상책임의 주체는 유조선 선주로 일원화하였으며, 배상책임의 원칙으로는 앞서 본 대로 '엄격책임의 원칙'을 도입하여 어느 경우이든 유조선주는 유류오염에 대한 손해에 대하여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종래의 선주의 배상책임의 원칙과 다른 것이며,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배상책임의 한도는 그 이전에 적용되던 1957년 선주책임제한 조약에서 인정되던 수준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 수준으로 인상하였다.*** 그런데 1969 CLC에 의하여 유류오염손해에 대하여 유조선주가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되어, 해당 유류를 수출·수입하거나, 정제하거나, 생산하는 석유산업에 종사하는 회사들로서는 유조선주가 지는 부담을 덜어 줄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자발적으로 유조선주가 유류오염 손해를 보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다음 회에 이러한 자발적 보상 시스템의 효시인 TOVALOP 및 CRISTAL의 시작에 관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주 *민사법상 배상과 보상은 구분한다. 배상은 손해배상을 말하는 것이고, 위법행위를 한 결과, 그 행위자가 손해를 전보하는 것을 말하며, 보상은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법률 등의 근거에 의하여 손해를 전보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쉬운 예로서는 토지를 수용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소유자에게 보상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선박은 Liberia 선적으로서 당시로는 대규모인 12만톤이었고, 쿠웨이트를 출발하여 영국 Wales의 Milford Haven 항을 향하여 항해하고 있던 중 어선과 충돌의 위험이 있었는데, 선장과 조타수가 자동항법장치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수동항법상태이었는지에 대하여 혼동을 하다가 산호초에 좌초함으로써 사고가 야기되었다.

***1957년 선주책임제한조약은 물적손해에 대하여 톤당 1,000프랑이었던 것을 1969 CLC에서는 톤당 2,000프랑으로 인상하였다.

****석유산업에 종사하는 회사들이 이와 같이 자발적인 보상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이유는 스스로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위험도 고려하였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유조선주가 위와 같이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되면, 그것은 결국은 운임에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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