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淙熙 KMI 부원장

▲ 姜淙熙 KMI 부원장
한국해운이 최전성기를 맞고 있다. 몇 년 전인 지난 2000년만 해도 한국선주협회 산하 회원사는 33개 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해운경기가 호전되면서 그 숫자가 급격히 증가해 현재 145개 사로 늘었다. 여기에 상당수 미 가입 연근해 취항 선사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외항선사 수는 200개 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200여 사에 이르는 우리나라 외항선사 숫자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한편 장기 호황으로 인한 해운기업 수의 증가는 집단 기업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외항해운기업의 대표적 기업실패에는 내부유보 적립 미흡, 혁신 기피, 신시장 개척 소홀, 비용 절감 실패 등이 있다. 이러한 기업실패는 외항해운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특히 불황 시 크게 문제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다수 외항해운기업은 호황이 장기화되면 기업실패 예방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우선 호황일 때 해운기업은 경쟁적으로 신규투자에 나선다. 또한 호황의 장기화는 해운기업의 배당에 대한 기대를 높게 한다. 결과적으로 장기 호황 국면에서 외항해운기업의 내부유보 적립 비율이 예상보다 높지 않다. 다음으로 호황이 길어지면 해운기업은 매출이 늘고 수익이 증가한다. 이에 따라 해운기업은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만족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혁신 기피 현상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호황에 힘입어 해운기업이 부를 축적하면 종종 내부 갈등과 반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 국민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는 S해운이 그 좋은 사례다. 이처럼 내부 갈등과 반목이 표출된 기업은 혁신은 말할 것도 없고 신시장 개척과 같은 사업 다각화가 불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호황의 장기화는 해운기업의 비용 절감 필요성을 무디게 한다. 이러한 무감각은 수익률이 낮은 사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수익률이 떨어진다.

호황 시 자본을 축적한 선사는 예외 없이 고가의 선박에 투자하고 그 결과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외부적 충격과 내부적 갈등이 일시에 몰아치면 집단적 기업실패가 발생한다. 海運史를 되돌아봐도 한국해운은 집단적 기업실패를 되풀이해 왔다. 결국 선주(owner) 또는 대형선사란 말도 호황을 기반으로 할 경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야심에 지나지 않는다. 선주 또는 대형선사라는 이름 때문에 호황에 부담해야 하는 높은 비용과 이에 따른 집단적 기업실패에도 불구하고 한국해운이 그런 이름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의 불가사의다. 호황에 진입한 신규 선사와 몸집을 크게 불린 대형선사는 집단적 기업실패라는 저주가 따를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은데도 한국해운은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과거 정부개입이 가능한 시절엔 집단적 기업실패를 보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개방화, 자율화, 세계화로 대표되는 작금의 해운정책 패러다임 하에서 기업실패에 대한 정부개입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제 해운의 기업실패는 오직 기업의 몫이고 책임이다. 이에 한국해운의 집단적 기업실패 개연성과 관련해 마크 피버의 다음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나는 항상 열광 현상에 매혹된다.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마녀사냥, 연금술, 최면술, 매카시즘 등은 모두 열광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언제나 투자열풍이 있었고 그런 때는 경기순환 상 가장 화끈한 국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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