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희 법무법인 정동국제 대표변호사
용선계약이 길게 연결되다 보면, A 선박에 관한 용선계약에서는 X가 선주의 지위에 있게 되고, Y가 용선자의 지위가 되는 반면에, B 선박에 관한 용선계약에서는 반대로 Y가 선주의 지위에 서고, X가 용선자의 지위에 서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근간의 용선계약 분쟁에서 이러한 경우는 허다하게 많았음을 해운업계 종사자는 잘 알고 있다.

물론 두 용선계약의 준거법은 영국법이라고 하자. 이때 X가 Y에 대하여 A 선박에 관한 용선계약 아래에서의 용선료의 지급 청구를 할 때, Y가 B 선박에 관한 용선계약 아래에서 자신이 X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용선료 채권을 가지고 상계 (set-off)하겠다고 할 때, 이것은 법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이것이 오늘 보고자 하는 문제이다.

상계에 관하여 영국법의 입장은 우리나라 법에 비하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법에 의하면 상계가 허용되기 위한 요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고, 특별히 법적으로 상계가 금지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계는 허용된다. 그것은 재판에서 이를 할 수도 있지만, 재판 외에서 상대방에게 서신을 보내거나 구두로 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법상 원칙적으로 상계는 두 가지의 경우에만 허용된다. 하나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같은 거래 관계 또는 같은 계약관계에서 발생된 채권∙채무이다. 이를 Bim Kemi v. Blackburn [2001]2 Lloyd’s Rep 2 사건에서는 “inseparable connection”즉, “불가분의 관련성”이라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하나의 용선계약에서 발생된 것으로서 선주가 용선자에 대하여 가지는 용선료 채권과 용선자가 선주에 대하여 가지는 address commission, 용선료 정산에 따른 반대 채권(즉, 소위 BOD와 BOR을 서로 정산하여 용선자가 연료대를 받아야 할 경우 가지게 되는 채권)에 대하여는 같은 용선계약 아래에서 발생된 채권∙채무이므로 서로 상계할 수 있다. 이러한 상계를 Equitable Set-Off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경우는 서로의 채무가 “liquidated debt” 상태인 경우 비록 양 채무가 서로 관련이 없는 계약 또는 거래에서 발생되었다고 하더라도 상계가 허용된다. 여기에서 “liquidated debt”란 “a debt whose amount has been determined by agreement of the parties or by operation of law”(Black’s Law Dictionary, pp. 432-433, debt에 관한 부분)으로 정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용선료 채무로서 daily rate가 확정적이고, 적용될 용선기간이 확인될 경우에는 그 용선료 채무는 “liquidated debt”가 된다는 것이다.1) 이와 같은 상계를 “Legal” or “Independent Set-Off”이라 한다.

이러한 영국법의 입장에 비추어 모두에 제기된 의문점을 해결하여 본다면, A 선박에 관한 용선계약 아래에서 X가 Y에 대하여 청구하는 용선료나 B 선박에 관한 용선계약 아래에서 Y가 X에 대하여 청구하는 용선료는 이를 “liquidated debt”라고 할 수 없다. X나 Y는 서로 용선료의 금액에 대하여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용선계약을 서로 “불가분의 관련성”이 있는 계약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영국법 상 X가 Y에 대하여 A 선박에 관한 용선계약 아래에서의 용선료의 지급 청구를 할 때, Y가 B 선박에 관한 용선계약 아래에서 자신이 X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용선료 채권을 가지고 상계 (set-off)하겠다고 할 때, 이것은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문제가 예를 들면 영국에서의 중재 또는 소송에서 다루어졌을 때,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될 것임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법원에서 동일한 문제가 다루어졌을 때에도 같은 결론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하여 논박이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로서는 우리나라 법원에서도 동일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준거법이 영국법이기 때문에 상계에 있어서도 그대로 영국법의 입장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와는 완전히 별개로 위 예문에서 X나 Y가 회생절차나 파산절차에 들어가게 될 경우 우리나라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 회생법”)에 의하면 상계가 허용되는 바, 이 경우에는 필자로서 상계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법은 채무자회생법이기 때문이며, 영국의 파산법(Insolvency Act)의 입장도 상계가 허용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위와 같이 결론을 내는 것에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여기에서 혼동이 없게 하기 위하여 한 가지 분명히 할 사항은 일반적인 경우에 영국법상 위와 같이 상계가 제한되는 것은 그 채권∙채무가 용선계약에서 발생되었는지 여부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용선료 청구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공제를 하려는 시도를 막는 것은 또 다른 법리이며, 상계를 제한하는 것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주---

1) Aectra Refining and Marketing Inc. v. Exmar N.V. (The “New Vanguard”) [1995]1Lloyd’s Rep.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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