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안정성·운항속도 해결이 관건
한·러협력, 자유로운 상업적 이용 전제조건

"천연가스, 유류 운송시 경제성 충분"

과학자들은 2050년 쯤에야 북극의 얼음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2007년에 유사한 현상이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북극은 지구의 환경문제를 예측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지구온난화, 이산화탄소 발생량, 공해, 생물 다양성 문제 등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지구촌의 '경보장치' 역할을 하는 북극해로부터 전해져 오는 불안한 소식들은 일반인, 특히 환경단체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동안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항해가 곤란했던 동 지역에서 얼음이란 자연장애물이 사라져, 다른 항로를 이용해 왔던 불편이 사라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황진회 부연구위원은 이같은 북극해의 변화에 맞춰, 해운물류, 국가정책적 측면에서의 전략 수립 및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6월 23일 코엑스 그랜드 컨퍼런스룸에서 개최된 '북극해 변화에 따른 대응방안'이란 국제세미나에서 제시된 황진회 부연구위원의 발제문을 정리, 게재한다.  

북극권에는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25% 정도가 매장돼 있다. 이러한 자원을 개발·생산해 유럽, 북미, 아시아지역으로 수송할 때, 북극해 항로를 이용하면 기존의 생산지(중동, 북아프리카)에서 운송하는 것 보다 시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해상화물운송시장의 성립조건에 따라 북극해 항로의 가능성을 우선 점검해보고자 한다. 해상화물운송시장이 성립하려면 우선 화물(수요)과 선박(공급)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항만과 같은 인프라와 △해기사, 선원, 도선사 등과 같은 인력 △법률, 규정 등과 같은 제도 △해상보험, 중개업과 같은 부대산업 등의 기타 요건이 수요, 공급과 맞물리면서 해운시장은 성립된다.
 
북극해 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화종은 액체, 벌크, 컨테이너로 구분할 수 있다. 액체화물 중에서도 천연가스, 유류의 북극해를 통한 운송은 경제성이 있다.

북극해 주변의 천연가스는 파이프라인과 선박으로 수송할 수 있다. 하지만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송 시 이를 설치하기 위한 대규모 토목·건설 사업을 유발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파이프라인이 차단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수송은 공급자 입장에서는 판매처의 제한과 LNG Spot 시장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을 노정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인 가즈프롬社는 다양한 고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LNG 운반선을 통한 가스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가즈프롬 이사회는 러시아 북부와 북극해 사이 야말반도의 천연가스를 이용한 LNG 공장 건설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수송 프로젝트의 지연을 고려할 때 북극해 천연가스의 조기 판매를 위해 현지에서 북극해를 통한 LNG 수송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천연가스 판매가격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중동과 북극해에 인접한 러시아로부터 각각 해상운송 시 경제성을 비교하면 답은 더욱 명쾌해진다. 선박속도를 20노트라고 전제했을 때 오만에서 인천항까지 운송하는데 12일이 소요된다. 하지만 북극해 연안의 러시아 페벡(Pevek)에서 삼척항까지는 7.5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선박을 통한 수송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하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화종인 유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바이에서 여수까지는 대략 12.3일이 운송에 소요되는 반면 러시아 페벡에서는 7.8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극해의 인프라가 개선되고 수출이 본격화 될 경우 중동산 유류 수입보다 수송 조건 면에서는 경제적이다.

북극해 항로개설 시 대표적인 벌크화종으로 거론되고 있는 석탄도 호주, 브라질, 남아공 등 기존의 생산지에서 운송하는 것보다 해상항로 거리 및 운항시간을 경감할 수 있다. 단, 러시아의 항만시설과 생산성, 호주 항만의 체선 정도에 따라 경제성이 달리 나타남을 일러둔다.

컨테이너의 경우 구주항로 화물을 대체하기에는 항로 안정성, 운항 속도 등의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는 선결과제가 있다. 그러나 온도 등 외부환경에 민감하지 않고 납기 시간에 여유가 있는 화물을 중심으로 계속적으로 수송이 시도될 가능성이 높고, 이같은 경험이 북극항로를 새로운 국제항로로 발전시키는 데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북극해 항로의 운항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이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대응이 필요하다. 북극해 항로는 이미 러시아에서 100여 년 전부터 소규모로 운항을 했고, 최근에는 선박운항 횟수와 선대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북극해 북동항로는 여러 가지 규제로 인해 외국선박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고, 관련 법률에 대한 분석도 매우 미비한 상황이다. 따라서 북극해 항로의 개방에 대비한 러시아의 규제내용을 파악하고 관련법률의 분석, 운항기술 개발, 선원교육, 러시아와의 협력체제 구축 등을 위한 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북극항로가 개방될 경우 운항할 수 있는 적격선박을 개발해 북극해 운항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북극해 운항시장에서 우리나라 선사의 참여율을 높이고, 우리나라 조선소의 선박건조 수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북극항로 운항을 위한 선원훈련 프로그램 개발과 국제협력도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북극해는 얼음과 추위 등의 환경적인 요인과 더불어 통신, 해도, 항해기술 등의 측면에서도 개발의 여지가 많은 상태다. 따라서 북극해를 운항할 수 있는 선원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한 선원 교육훈련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한 시점이다.

북극해에서의 선박 운항을 위해 러시아,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는 자격을 갖춘 선원만 승선시키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Admiral Makarov State Maritime Academy에서 북극해 항해를 위한 전문교육 및 훈련이 실시되고 있으며 여기서 배출되는 유자격 선원은 풍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선원훈련 프로그램은 국한지역이기는 하지만 북극해를 운항한 경험을 보유한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등의 국가와 협력해 개발하고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는 과정개설도 놓쳐서는 안 된다.

북극해 항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상업적인 베이스의 민간선사의 참여가 많아야 하고, 이와 함께 현재 국내항로에 머물러 있는 항로를 국제항로로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북극해 항로 이용을 위한 화물별, 선종별, 항로별 경제성을 분석하고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북극항로 운항을 예측할 수 있는 운항 시뮬레이션 개발도 필요하다.

우리의 북극항로 관련 대응전략 수립 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러 협력 체제 구축에 있다. 현재 북극해를 운항할 경우 항로의 대부분은 러시아 영해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 선박이 북극해를 운항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교통부 및 항만당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 교통부는 북극해 항로에 대해 외국 선박의 입출항을 상당히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롭고 상업적인 항행과 북극항만 이용을 위한 한·러 협력체제 구축이 그 어떤 당면과제보다 중요하다. 가령, 북극항로의 자유로운 상업적 이용을 위해 러시아의 해운, 항만, 선원 관련 기관과 MOU를 체결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현재 무르만스크 항만을 비롯한 북극해 항만은 북극항로 개발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다양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재원마련, 마케팅, 항만운영 노하우 등이 부족한 실정이라 효율적인 개발계획 수립에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기업의 북극해 항만투자를 위한 사전 타당성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깊이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해운, 항만 관련 당사자뿐만 아니라 선·하주도 북극항로 개설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은 북극해의 유류나 천연가스 수입에 대비한 중장기 대책을 수립하고 특히 우리나라 수입 시 국적선사의 수송시장 참여를 보장하는 조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적선사도 북극해 원유 시장 수송을 위한 선박, 운항기술, 선원인력 등을 확보하는 한편, 현지의 자원 개발업체 및 해운기업과의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극항로 개방과 관련한 전략은 비단 해운물류 차원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국가 정책적 측면에서의 전략 수립도 요구되고 있다. 북극해 정책은 개발과 보전으로 양분될 수 있다. 북극해 개발과 이용이 가능해도 해당 지역을 접하고 있는 연안국(캐나다, 러시아, 덴마크 등)이 아닌 주변국의 참여는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북극해 변화에 대비해 우리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북극해 기초연구의 확대나 관련 국제위원회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자원확보 등과 같은 북극해의 상업적 이용만을 강조한 나머지 환경변화 대책을 소홀히 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관련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국가 정책적 측면에서 북극항로 개방에 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제로 북극항로의 상업적 이용을 위한 환적항만 입지 조사 및 개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북극항로 중 북동항로(부산-블라디보스톡-무르만스크-로테르담) 및 북서항로(부산-알래스카-캐나다-미국 동안)상에는 기종점 항만을 제외하고는 항만 및 물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이는 동일 선박이 북극항로 전 구간을 항행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결빙 구간과 해빙 구간이 겹쳐 있어 쇄빙선박이 전 구간을 항행할 경우 운항 경제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개방된다면 중간 기항지로서 환적항만의 필요성이 대두될 것이며, 이에 따른 환적항만의 입지 조사 및 개발 타당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극항로 활용을 위한 한·중·일·러 공동사업단 구성 및 시범선박 운항 추진도 검토돼야 한다. 러시아 연안항로로 주로 이용 중인 북극해 북동항로를 극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국제화물(컨테이너 화물) 운송 해상항로로 활용하기 위해 러시아와 한·중·일 삼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항로별, 시나리오별 경제성 검토를 바탕으로 시범 선박의 연계 운항사업을 추진할 필요도 있다. 이 때 경제성을 확보한 컨테이너선의 성공적인 운항 여부는 극동아시아 주요 하주와 선사의 북극항로(북동항로) 운송에 대한 신뢰성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