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만철시서화전'을 연 최장화 전 해운항만청 해운국장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 고희를 맞고, 지난 일 더듬어 생각해보니 만감이 교차하네. 십년간 시서와 함께 여념 없이 살았고, 한폭의 필화에도 신선과 인연 맺는 기분이네. 어버이 은혜에 보답 못한 것을 항상 후회하고, 조상의 업도 계승치 못해 더 더욱 한스럽네. 세상 살면서 크게 이룬 것 없이 머리만 희어지고, 늙은이의 행적을 기록문서로 전하기가 부끄럽네."

지난 15일부터 서울 관훈동 소재 백악미술관에서 시서화 개인전을 가지고 있는 영운 최장화 전 해운항만청 해운국장의 '고희유감'이란 한시이다. 도록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시 한수야 말로 이번 전시회를 여는 최장화 전 국장의 심경을 잘 대변할 것이라 생각된다.
 
국가를 위해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오다 정년퇴임 후 흔히 운동이나 다른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기 쉬운 시간을 시서화 습작에 몰두, 12년 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최장화 옹의 열정들이 이번에 종로구 관훈동의 백악미술관에서 세상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의 시작부터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등 호된 신고식을 치르며 전시장소인 백악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릿기름이 빳빳하게 살아있는 단정한 노신사가 반겨주었다. 미술관 1, 2층에 전시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설명이 끝난 후, 인터뷰가 이어졌다.  -전문-

먼저 이번 시서화전을 연 소감은?
특별한 소감이랄 것까진 없다. 정년퇴임 후 처음 시서화에 대해 공부한지 12년 만에 이렇게 개인전을 내게 된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한다.

술은 항아리에서 정해진 기간이 지나야 잘 숙성된 훌륭한 술이 된다. 내가 본격적으로 한시, 문인화를 배우기 시작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아직도 숙성이 덜 된 상태에서 고희(古稀)라는 핑계로 '익지도 않은 술독'을 미리 열어버린 것은 아닌지 조바심도 든다.

시서화도 엄연한 예술의 한 장르다. 아무리 훌륭한 명작이라도 작가는 항상 그것이 미완성이라고 느낀다. 이 점에 관해서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보는 사람들이 냉철하게 판단하고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채찍을 가해주면 그만큼 내 작품들이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이번 개인전을 관람한 주변인들의 반응은?
우선 이번 전시회의 명칭인 晩徹詩書畵展(만철시서화전)에 대해 궁금해했다. 15일 개막식에 참석한 인사들 중에는 이 분야에서 기라성 같은 존재인 명망있는 인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만철(晩徹)'이란 단어가 생소하다고 했다. 이 단어는 늦게 깨닫는다는 뜻으로 장자의 대종사(大宗師)편에 등장하는 '조철(일찍 깨달음)'을 보는 순간 영감을 얻어 작명하게 됐다.

나는 늙어서야 시서화분야에 있어 철이 났다는 생각으로 조철과 대립된 '만철'이라 짓고 이 단어의 등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한한대자전을 위편삼절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는 내가 만든 신조어나 다름없다.

그리고 자작(自作) 및 자음(自吟)한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월간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교양지의 한시산책 코너에 3년전부터 투고하기 시작한 자작시를 액자형식으로 만들어 순서대로 전시한 것과 한국한시협회 기관지인 '시협풍화' 12호까지 게재했던 자작시까지 전시돼 있어 아주 독특한 전시회였다고 칭찬을 들었다.

통상 시서화 전시회를 할 때에는 두보나 이백같은 유명한 한시작가의 작품 중 일부를 붓글씨로 써 출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랑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번에 전시된 작품 대부분은 내가 직접 지어낸 한시 한 수, 한 수가 모여 이뤄진 것이다. 이 점에 관람객들이 놀라워했다.
  
시서화와 인연을 맺게 된 시기는 언제인가?
선친께서 서화에 능하셨다. 양정중학 1학년에 재학 중에 6·25동란이 일어나 고향인 평택으로 피난을 갔다.

고향에서 9·28 서울수복 시기까지 3개월 간 한문서당에서 소학과 서예를 조금 배운 것이 인연이 됐다. 이후 성인이 되서는 선친에 버금가는 서화소양을 갖추겠다는 개인적인 욕망의 발로도 한 몫 했다.

본격적으로 시서화에 몰두한 것은 공직생활을 마친 직후이다. 공직을 나와서 남들처럼 골프나 치고, 유흥에만 탐닉하는 것이 싫었다. 일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서실로 나서서 한시와 경서, 문인화 습득에 몰입하다보면 어느덧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5시가 훌쩍 넘곤 했다.

동서고금의 유명한 한시인 중 개인적으로 흠모하는 작가는?
특별히 싫어하는 작가는 없다. 중국의 이백, 두보, 왕유, 하지장과 우리의 이황, 이이, 서거정 선생의 작품들을 특히 좋아한다.

좋아하는 한시 형태를 굳이 말한다면 중국 당시의 7언 율시를 특히 좋아한다. 여기 전시된 한시중 7언 율시가 차지하는 비율이 제일 높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내가 그동안 자작·자음(自吟)한 한시(漢詩)가 약 310수 정도 된다. 이 작품들이 전부 금번 개인전 도록에 다 싣지 못해서 유감이다. 이번에 도록에 누락된 작품들은 추후 책으로 출간해서 공개하고 싶다.
 
전시회가 막을 내린 이후에도 시서화의 공부 및 습작활동에 매진해서 희수(喜壽)에 한번 더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작은 바램도 가져본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