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정호 일도해운 사장
1. 의의
정기용선계약에서 정기용선자는 용선기간 동안 약정한 범위 내에서 당해 선박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선박의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정기용선자가 선장에게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이 정기용선자의 선장지휘권이다. 사용약관에 있어서 정기용선자에게 인정되고 있는 지시․명령권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지시ㆍ명령권의 범위를 무제한적인 것이 아닌 제한된 범위의 것, 즉 정기용선자가 용선을 한 상업적인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 내의 지시ㆍ명령권만을 가질 뿐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사용약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용의 의미도 선박의 사용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람의 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나아가 선박의 사용은 선박에 의해 이행하도록 지시된 업무를 말하는 것이고 지시를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항해상의 사항은 포함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화물의 선적 또는 양하를 위하여 어느 항구로의 이동지시나 어느 항구에의 정박지시, 특정화물의 선적지시 등은 모두 정기용선자의 상업적인 목적달성에 필요한 지시이다. 그러나 선박의 운항 및 관리는 전적으로 선박소유자의 고유한 책임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정기용선자의 지시․명령권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법원은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해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손해배상책임의 귀속주체에 대하여 “정기용선계약에 있어서 선박의 점유, 선장 및 선원에 대한 임면권, 그리고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은 모두 선박소유자에게 있고, 특히 화물의 선적, 보관 및 양하 등에 관련된 상사적인 사항과 달리 선박의 항행 및 관리에 관련된 해기적인 사항에 관한 한 선장 및 선원들에 대한 객관적인 지휘․감독권은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로지 선박소유자에게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행 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용선자가 아니라 선박소유자가 선장의 사용자로서 상법 제878조 또는 제879조에 의한 배상책임을 부담한다.”라고 판시하였다.1) 또한 화물이나 선박에 즉각적으로 물리적인 손상의 위험이 없더라도 전쟁상태인 경우와 같이 특수한 경우, 선장은 정기용선자의 지시가 합법적인지를 검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2)

이와 같이 정기용선자는 선장지휘권을 갖는 반면에 선박의 사용으로 인하여 선박소유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보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정기용선자의 지시로 선장 등이 서명한 선하증권 기타의 서류로 인해 발생한 모든 결과와 책임에 대하여 정기용선자는 선박소유자에게 보상책임을 진다.

2. 정기용선계약서상 규정
정기용선자의 지시ㆍ명령권에 대하여 뉴욕프로듀스서식(1993) 제8조는 “선장은 (비록 선박소유자가 선임하였다고 하더라도) 취항과 대리업무에 관하여 정기용선자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볼타임서식(2001) 제9조는 “선장은 취항, 대리점 또는 기타의 준비와 관련하여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정기용선자는 선장, 항해사 또는 대리점이 선하증권 또는 기타의 서류에 서명함으로써 혹은 그 명령을 지켰기 때문에 생긴 모든 결과 또는 책임에 대하여, 선박의 서류가 부정확하였거나, 혹은 운송물의 초과운송으로 생긴 모든 결과 및 책임과 마찬가지로 선박소유자에게 보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3. 영국판례
영국법상 정기용선자의 선장지휘권에 관하여 연구하기 위하여 시대적 순서에 입각하여 영국판례를 중심으로 검토하기로 한다.

(1) Anastassia호 사건3)
선박소유자 Midwest Shipping사와 정기용선자 D.I. Henry사는 1968년 9월 23일에 Anastassia호에 대한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선박은 Chalna항에서 황마(jute)를 선적하였다. 선장은 선박이 유럽으로 항해하여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정기용선자는 “선박이 Singapore로 항해한다고 항만당국에게 통지하라.”라고 선장에게 지시하면서 절대로 사실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선박이 화물을 선적한 후에 이미 Chalna항을 출항한 상태에서 정기용선자는 “추가 선적할 화물이 있으니 Chalna항으로 돌아오라.”라고 1968년 10월 10일에 선장에게 지시하였다. 선장은 선박이 이미 500마일이나 항해하였고, 10월 20일까지 선적이 가능한 흘수를 맞출 수 없고, 또한 이미 선박의 항해일지에 목적지로 항해하고 있다고 기재하였고 그리고 기상상태가 나쁜 점 등을 언급하면서 Chalna항으로 돌아오라는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정기용선자는 선장에게 Chalna항으로 돌아오라고 다시 지시하였다. 결국, 선박은 정기용선자의 지시에 따라 10월 19일에 Chalna항에 도착하였다.

정기용선자는 “선장이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위반하여 지체된 5일 동안은 지급정지를 이유로 용선료를 지급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선박소유자는 정기용선계약의 위반을 부인하면서 정기용선자가 지체된 5일 동안의 용선료 전액을 지급할 것을 주장하였다. 중재인은 선박소유자에게 승소판정을 하였다. 또한 1심 법원 Donaldson판사는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받은 후에 선장은 즉시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선장이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르기 전에 상당히 숙고를 하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본 사건의 경우에는 선장이 선박을 Chalna로 되돌려 항해하라는 정기용선자의 지시에 따르기 전에 그 지시가 합리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를 검토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었으므로 지체된 5일 동안의 기간에 대하여 정기용선자는 용선료를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면서 중재인의 판정을 확인ㆍ지지하였다.

(2) Aquacharm호 사건4)
선박소유자 Actis사와 정기용선자 Sanko사는 Baltimore항에서 석탄을 선적하여 동경항에서 양하하는 항차에 사용하고자 1974년에 Aquacharm호에 대한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정기용선계약서는 “정기용선자는 선장의 감독 하에 화물을 선적하고 양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정기용선자는 선장에게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흘수까지만 화물을 선적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선장은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기준을 초과하여 화물을 선적하였기 때문에, 선박이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636톤의 석탄이 양하되었고 선박이 파나마운하를 통과한 후에 다시 선적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미화 71,470.-불의 환적비용과 지체된 8일 23시간 45분 동안의 용선료에 해당하는 미화 86,345.-불의 지급정지가 발생하였다.

선박소유자는 “정기용선계약서상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조항에 의하여 환적비용 미화 71,470.-불을 정기용선자가 보상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정기용선자는 “선장이 화물을 선적할 때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선박이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지체된 8일 23시간 45분 동안의 용선료에 해당하는 미화 86,345.-불은 지급정지를 이유로 선박소유자에게 지급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1심 법원 Lloyd판사는 “선박은 환적작업을 하는 동안에 아무런 문제없이 가동할 수 있는 상태였으므로 지체된 8일 23시간 45분은 정기용선계약서상의 지급정지가 아니다. 또한 환적비용은 선적할 때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선박소유자 또는 선박소유자의 고용인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하였으므로 선박소유자는 환적비용을 보상받을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항소법원(Denning M.R.판사, Show판사와 Grifliths판사)은 1심 법원 Lloyd판사의 판결을 확인ㆍ지지하였다.

주---

1) 대판 2003. 8. 22, 2001다65977.
2) Coghlin Terence, W.Baker Andrew, Kenny Julian, Kimball John D., Time Charters, 6th ed.,(London : Informa, 2008), p.335.
3) Midwest Shipping Co. Inc. v. D.I. Henry (Jute) Ltd. [1971] 1 Lloyd's Rep. 375 (Q.B.).
4) Actis Co. Ltd. v. The Sanko Steamship Co. Ltd. - The Aquacharm [1982] 1 Lloyd's Rep. 7; [1982] 1 W.L.R. 119; [1982] 1 All E.R. 390 (C.A.); aff'g [1980] 2 Lloyd's Rep. 237 (Q.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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