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마음

▲ 이종석 사장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가정교사를 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가정교사로 숙식은 해결되었으나 매학기마다 납부해야 하는 등록금은 역시 큰 부담이었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께 원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서산 지곡초등학교 교사로 계실 때였다. 아버지를 찾아뵙고 등록금을 부탁드렸으나 박봉에 모아둔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여러 이웃을 찾아다니며 얼마의 학자금을 구하여 건네주시고는 서산 읍내까지 바래다주시겠다고 따라 나오셨다.

그때는 차가 드물었기 때문에 도보로 약 10km를 걷게 되었다. 중간쯤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옷이 흠뻑 젖고 냇물이 불어 바지를 걷어 올리지 않고는 건널 수 없었다. 내가 “아버지 제 등에 업히세요” 하고 말하려는 순간 아버지께서 먼저 등을 내미시며 업히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여 사양하였으나 재차 “나는 이미 젖었으니 괜찮다. 어서 업혀라” 하시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등에 업혀 불어 오른 냇물을 건넜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좋아 하셨다. 길옆 주막(막걸리 집)에 들어가 막걸리 한 잔(사발)을 청하여 드시고는 “얘! 너도 한 잔 마셔라” 하시면서 주인에게 부탁하였다. 주인이 따라준 막걸리 한 잔을 나도 비웠다. 아버지는 대견스러운 아들에 대한 부정(父情)과 헤어짐의 아쉬움을 술잔에 담아 건네주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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