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만남

▲ 이종석 사장
고려대 3학년 때였다. 방학 기간 중 특별 과외지도를 해달라는 학부모의 부탁을 받아 초등학교 학생 3명에게 과외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8월 15일이었는데 아이들이 국경일(휴일)이니 오전 공부만 하고 안양 풀장으로 놀러가자고 하였다. 마침 방문 중이던 고등학교 동창 김우재(후일 인도네시아 무궁화유통 그룹 회장)와 모두 함께 가기로 하고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안양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 쪽으로 따라 나가다 보니 정문 쪽이 아니고 안양유원지 쪽 철둑길이었다. 철둑길을 따라 안양 풀장 쪽으로 가던 중 뜻밖에 항상 그리던 중학교 여자동창인 장금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야간 중학시절 하늘색 장화를 신고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녀도 친구(2명)들과 함께 안양 풀장으로 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쉽게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명랑하고 또렷한 목소리를 나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감격적으로 만난, 꿈에 그리던 이 사람과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전부터 나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던 친구 김우재가 귓속말로 수영을 끝내고 상경시에 동행하자고 말해보라 하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간신히 만나자는 말을 건넸다.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는 흔쾌히 약속했다. 약속 후 헤어져 친구들과 물놀이를 했지만, 마음은 온통 그녀에게 가 있었다.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정말 약속 장소에 나타날까?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약속시간이 되었다. 풀장 앞 약속 장소로 가보니 역시 그녀들도 와 있었다. 함께 포도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서로 주소도 확인하였는데 그녀는 길음동에 살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모두 함께 안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영등포역에서 하차하여 집으로 와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꿈에 그리던 그녀를 만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자주 연락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자는 취지의 편지였다. 나는 편지에 진정으로 그대를 연모하였다는 내용의 글도 써서 보냈다. 그리고는 답장을 매일같이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재차 편지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쓴 진실한 답장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많이도 읊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몇 개월이 지난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때 뜻밖에도 그녀에게서 편지가 왔다. 내가 보낸 편지의 때늦은 답장이었다. 동창생끼리 오랜만에 만나 이렇게 편지까지 쓰게 되는 것도 인연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반가움에 즉시 답장을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그리고 대학 4학년 5월 초 고려대학교에서는 개교기념행사가 다양하게 개최되었다. 쌍쌍파티에 그녀를 초대했다. 교정을 안내해 주며 함께 사진 촬영도 하고, 어여쁘고 청순한 모습으로 참석해 준 그녀와 가슴 벅찬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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