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과 공직자의 길①

▲ 이종석 사장
한일회담 반대 등으로 어수선했던 대학 졸업반 생활도 끝나가고 있었지만 딱히 나의 진로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졸업을 하게 되면 취직을 하든가 군대를 가든가 해야 하는데 당시 취직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병역을 필해야 했기 때문에 병역 미필상태에서는 취직시험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할 계획으로 병무청에 문의해보니 군 입대 지원을 한다 해도 입영대상자가 누적되어 있어 언제 입대할 수 있을는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해가 바뀌고 졸업식 날이 다가왔다.

1965년 2월 25일 주위의 축복 속에 고려대학교 법대 4년 전 과정을 마치고 졸업과 동시에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식에는 아버지, 할머니, 누이동생 종렬을 비롯해 많은 친지들과 사랑하는 그녀 장금자도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그날의 기쁨도 잠시, 졸업은 하였으나 확실한 진로가 설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우선 중등학교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영등포 소재 대학 입시학원 시간강사를 맡았다. 그리고 영장이 나올 때까지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장금자의 대학 진학을 위해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장금자는 편모슬하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형편이었다. 서로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장래를 위하여 역경을 뚫고 대학에 진학할 것을 권고했다. 그녀는 어렵사리 나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우선 지원할 대학을 선정하고 시험과목에 대한 예상문제를 지도하며 시험 준비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녀는 서라벌예술 초급대학 문예창작과를 지원하게 되었고, 오랜 공백 기간이 있었음에도 감격스럽게 합격했다. 입학금은 절반씩 마련하여 납부하였다. 그것은 학구열에 대한 서로의 확인이었다.

1965년 3월 금자는 대학생이 되어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루는 고연전 농구시합이 열려 응원차 입장했다가 막 공직에 입문한 동기 교우 박정길(후일 구청장)을 만났다. 그는 나의 근황을 묻고는 굳이 군에 입대하는 대신에 병역을 기피한 사실이 없으면 응시 가능하니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보라고 권유했다. 듣고 보니 좋은 조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뿐 아니라 공직에 관심이 있어 선택과목으로 행정학을 공부했었으므로 국가공무원 채용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그해 9월 총무처에서 시행한 제9회 5급을류 국가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했다(동년 11월 3일). 그리고 합격자 등록 및 추천 절차를 거쳐 이듬해인 1966년 2월 16일 교통부 묵호지방 해운국(국장 곽삼주)에서 공무원 임용장을 받고 근무를 시작했다. 이때 함께 임용된 동기가 3명이었는데, 나와 이병덕(후일 해양수산부 서기관)과 이학상(현 (주)대한제분 대표이사)이었다.

처음에 경리업무와 선박검사지원 업무를 수행했다. 전공분야와 직접 관련된 업무는 아니었으나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자세로 업무에 임했다. 동해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쳐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창밖의 장관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해 5월에는 강원도 춘천에서 시행된 신규채용 공무원 교육을 받게 되었다.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을 습득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과정이었다. 교육기간 중 그곳으로 휴일에 찾아온 금자와 함께 소양강 구경을 하고(내심 약혼사진이라고 생각하며) 사진도 찍었다. 교육을 마치고 다시 묵호로 내려왔다. 금자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휴일에는 상경하여 데이트를 즐기며 장래를 약속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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