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올려라

▲ 이종석 사장
1973년 교통부 감사관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하루는 한국전력공사 직원이 찾아와 고압전력선이 우리 집 지붕 위로 건너갈 예정이니 그리 알라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우리 집 약 100m 옆 밭에 청와대 백(줄)이 있는 사람이 주물공장 건물을 신축했는데 그 공장에 들어가는 고압전력선 설치 공사를 추진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압전선이 지붕 위로 지나게 되면 위험할 뿐 아니라 우리 대지에 미치는 영향도 클 터인데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이런 공사를 한다니 응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전 직원에게 우리는 이를 용인할 수 없다고 하니 그는 이미 공사 계획이 모두 수립되어 월요일에 공사가 시행될 수밖에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가버렸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어떤 저지 방안을 강구할 수도 없어 불안 속에 하루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월요일부터는 지방출장이었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아내에게 “고압선이 지붕 위로 지나가면 우리는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되니 내가 지방출장을 떠난 후 한국전력에서 고압전선 설치공사를 강행하려 할 때는 어떻게든 막도록 하시오!”라고 말했다.

월요일 새벽 나는 지방출장을 떠나 3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들은 모든 장비를 동원하여 고압전선을 설치하려다가 아내의 강력한 반발과 주민들의 항의에 공사를 중단하고 철수했다는 것이다. 안도하면서 아내에게 경위를 물었으나 빙긋이 미소만 지을 뿐 별말이 없었다. 후에 옆 주민들의 말을 듣고 안 일이지만 아내는 아이를 업고 항의하다가 인부들이 전선줄을 지붕 위로 올리려 하자 나를 이 전선에 매달아 함께 올리라고 고함치며 항거했다는 것이다. 이에 주민들이 나서서 사고 날 우려도 있으니 공사를 미루라고 요구하여 결국 설치를 미루고 철수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골칫거리가 해결되었다고 마음 놓고 다음 날 출근을 했다. 그런데 집무 중에 총무과장이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총무과장은 인사, 상, 벌 등을 관장하는 상사이므로 항상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별다른 일도 없는데 부른다는 것에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총무과장실에 들어갔다. 총무과장은 나를 앉혀 놓고 “청와대 ○○○과장을 아느냐?” 묻고는 문제의 우리 집 옆 공장에 전력선 인입공사를 하는 데 대하여 한전에서 하고자 하는 대로 진행하도록 해 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청와대 ○○○과장은 우리 교통부 업무에 영향력을 많이 미치는 위치에 있으므로 잘 협조해 주어야 할 것임을 은근히 압박하는 것이었다.

거절을 하자니 나한테 시련이 다가올 것이 뻔하고 승낙을 하자니 궁핍한 생활 속에서 간신히 장만한 집터가 건물도 제대로 지을 수 없는, 가치 없는 땅이 되어버릴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개인생활에 해당하는 가사문제를 공공기관의 공식적인 조직을 동원하여 하급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데 대한 분통도 치밀었다. 총무과장은 잘 생각해서 답하라고 다시 한 번 압박을 했다. 나는 어떠한 불이익이 오더라도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현재 이 집터는 오지(汚地)인 온수동 국유지(철도부지)로서 재정능력이 없어 현재 5년 연부로 토지 대금을 분할 납부 중이며 한전 공사 계획대로 우리 집 지붕을 넘어 고압전선이 지나가면 가치하락으로 우리 가정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자세한 설명을 들은 총무과장은 일단 알겠노라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고 추후 다시 이야기하자며 말을 마쳤다. 총무과장실을 나오면서 또 다시 불안스러웠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퇴근 후 귀가하였을 때 주물공장 책임자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교통부로부터 청와대로 답이 왔는데 “그 직원(본인)은 청빈하고 근면한 모범직원으로 우리 교통부로선 도와주어야 할 입장이니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압전선은 선로공사를 수정하여 우리 집에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결국 전주를 하나 더 세우고 도로를 따라 전기선로공사를 시행하여 지금도 전선이 ‘ㄱ’자로 배치되어 있다.

▲ 1977. 3. 12 강창성 항만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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