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의 첫 해외 출장①

▲ 이종석 사장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일의 연속이었다. 다음 해인 1978년 1월 30일에 선진국 갑문운영 및 유지보수 기술 습득을 위해 유럽 출장을 가게 되었다.

소속기관인 인천항 갑문관리소 기계기사 2명 및 인천항 갑문운영 용역회사인 동아건설 직원 등과 함께 프랑스 덩케르크(DunKerque)항, 르 아브르(Le havre)항 등을 방문하고 그들 선진 항만의 갑문운영과 유지보수 상황을 견학하고 벤치마킹하는 40일간의 출장이었다.

난생 처음 공무 해외 출장 여권을 발급받고 입국비자를 받았다. 출국하는 날 김포공항에는 아내와 세 아이들과 동료직원, 친구 등이 나와 환송해주었다. 출국장을 나와 파리행 대한항공 항공기에 오르고 나니 비로소 “아 이젠 정말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격무에 쫓기다 보니 그동안은 해외 출장을 간다는 실감을 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음악 듣고 TV 보고 식사하고 잠자면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11시간 동안 비행하여 알래스카 앵커리지공항에 착륙하였다. 급유하는 동안 눈 덮인 앵커리지 새벽 공항 모습과 면세점을 구경했다. 모든 것이 이채로웠고 사람들이 대부분이 백인과 흑인 등이어서 이국땅임을 실감케 했다.

약 2시간 휴식 후 다시 출발하여 북극항로를 거쳐 파리공항으로 향했다. 창 아래로 얼어붙은 북극해가 희미하게 보이고 저 멀리 옆으로 지나가는 항공기와 항적이 신비롭게만 보였다. 탁자 위 찻잔에 담긴 차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여객기는 조용히 비행하고 있었다.

고향 서산에 계신 아버님께 항공엽서를 썼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한 장 썼다. 아침 6시경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몽마르트에 예약된 ‘애진원’이라는 작은 호텔을 찾아 여장을 풀었다.

영사관을 찾아 덩케르크 항만청 관계자들과 접촉하여 일정을 확인한 후 파리 시내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환전을 위해 인근 파리 은행에 갔다. 창구에 20세 전후의 마치 인형 같은 금발의 미녀가 환전 업무를 취급하고 있었는데 귀걸이는 물론 팔찌를 두 개씩이나 하고 있었다. 그는 낯선 동양인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는지 재떨이를 앞에 당겨 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애진원 호텔 주인의 안내로 베르사유궁을 관람했다. 호화찬란했던 루이 왕가의 발자취를 보면서 우리나라와 많이 비교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열차편으로 첫 목적지인 덩케르크 항만청으로 갔다. 덩케르크 항은 부두면적 16km2에 선석 수 70개와 창고 및 상옥 150,000m2 각종 크레인 120대를 갖춘 프랑스 제3의 항만으로서 4개소의 갑문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영어를 쓰지 않았고 우리는 불어를 몰랐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곤란했다. 한참 만에 영어를 구사하는 법무관이 동석하여 우리를 도와주었다. 다음 날부터 2주 동안 갑문운영과 보수에 관하여 견학하였다. 꼬박 2주 동안을 현장을 답사하고 토론과 견습을 계속했다. 강사 또는 기술자가 설명하면 법무관이 영어로 통역하고 내가 동행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이곳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업무를 수행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휴무였다(당시 우리나라는 토요일은 13시까지 근무했다). 첫 주 금요일 일과를 마치고 열차편으로 벨기에(Belgium)로 갔다. 별도의 입국수속 없이 열차 내에서 여권과 차표를 확인하는 것으로 입국수속을 대신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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