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예선업까지 진출시도>

 공정거래법 개정, 중소기업 업종 침범 막아라

정유회사를 거느린 대기업의 사실상 계열회사가 ‘테일링’이라는 유조선 접안시 줄을 잡아주는 항만예선 업무를 하기 위해 예선업 등록을 신청했고, 이에 대해 울산항의 예선업자들은 요로에 대기업 계열회사의 예선업 진출을 막아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다. 대기업들의 도 넘치는 중소기업 업종 진출이 비난을 받고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정부의 규제방안까지 마련되고 있는 이 때에 이같은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우선 분노의 감정이다. 오죽할 것이 없으면 ‘콩나물 공장’도 내가 하겠다고 나오겠냐고 비아냥거리고 싶은 것이다.

해운물류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자회사 만들기가 너무 성행하다 보니 해운물류업 영역이 계속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것이 복합운송주선업의 경우로, 지금 웬만한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고 할 수 있는 포워딩업을 하는 계열회사들을 다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나 LG그룹과 같은 큰 그룹회사들이 앞장을 서자 최근 들어서는 그보다 몸집이 작은 그룹회사들도 너도나도 물류 자회사 만들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현재는 심지어 웬만한 건설업체들 마저도 상당수 포워딩업체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렇게 대기업들이 복합운송주선업종까지 마구 진출하면서 복합운송주선업계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시황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다가 하주들은 싼운임을 원하고 그나마 작은 영역마저 대그룹 계열사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2년전에 포스코가 해운업에 진출하겠다고 하여 국회에서 토론회까지 벌이며 해운업계가 방어에 나서야 했던 웃지도 못할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여기에다가 최근에는 심심치 않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이 국적선사를 인수하여 외항운송사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루머가 퍼지고 있다. 이미 많은 대기업들이 외항운송사업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어서 “왜 우리들만 안된다고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한 상황이다. 하지만 만약에 실제로 많은 화물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 외항선사로 등록하여 영업에 나서게 된다면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기존의 국적선사들은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국제경쟁을 하는 해운업에 왜 국내 대기업만 진출하지 못하게 하느냐”며 생떼를 쓰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 없다.

그러고 보니 국적 외항해운업체는 물론이고 해상운송주선업체와 같은 국제비지니스를 하는 중소기업업종에 대기업들이 호시탐탐 진출을 해 오는 것을 지나서, 이제는 아예 예선업과 같은 국내 비지니스에도 대기업들이 손을 뻗치려고 한다는 것이어서 더욱 더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해운물류업종에서 ‘내 화물은 내가 나른다’는 소위 인더스트리얼 캐리어를 더 이상 발붙이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설사 계열사로 인더스트리얼 캐리어를 만든다고 해도 ‘거양해운’의 예처럼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 뻔하다. 더구나 인더스트리얼 캐리어는 전문성 부족으로 관련 대기업에도 결국 도움이 될 수 없으며, 경쟁하는 여타 국적선사들 어려운 지경을 몰아넣은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복합운송주선업의 경우도 대기업 진출을 철저히 막아야 하며 이미 진출한 대기업 계열회사가 있다면 꼭 필요한 일정 부분에서만 영업을 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런 것이 실현되려면 먼저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업종 침범이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를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는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업종 침범이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처벌하거나 규제하는 법조항을 갖고 있지 못하다. 법을 집행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실무자들)도 대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대량화물 하주의 해운업 진출은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라 이것을 막는 해운업체들이 오히려 법 위반이다”라고 항변하고 있으니 역시 믿음직스럽지가 못하다. 마침 정부에서도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큰 기대를 갖고 기다려 볼 일이다.

하지만 우리 해운물류업계가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보다도 대기업들이 계열사들을 통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대한 침범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 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이야 중소기업 업종에라도 진출하면 코스트 절감이나 내부 시너지 효과 등을 기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것은 결국 한 산업을 파괴하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깊이 생각해 봐야만 한다. 따라서 만약에 공정거래법을 개정한다면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테두리를 정하고 그 테두리 안으로 대기업들이 진출하는 것을 강력하게 막아야만 한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결국 대부분의 서비스 업종을 얘기하며, 그 중에도 해운물류업종은 가장 먼저 대기업의 진출을 차단해야 업종으로 분류돼야 한다.

우리는 법적인 규제 이전에 대기업들이 스스로 중소기업업종에서의 철수를 결정함으로써 중소기업과의 상생 의지를 실천해주기를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불어 살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으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협력만이 난국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려나갈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했으면 한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