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저도 아버지 사업을 이어 받으렵니다

▲ 은상수상자 양성인씨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사업이 어업이라 해양경찰에 대해 일찍 알게 되었습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학원을 다니지 못해 동네에 있는 해양경찰 출장소 전경들에게 공부를 배우고, 부모님께서 몇 일간 배에 가시면 출장소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해양경찰에 대한 꿈을 키워왔고, 내가 받은 도움만큼 어민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달려왔으며, 지금은 그토록 원하던 해양경찰관이라는 꿈을 이뤄 군산해양경찰서 315함 경비정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고향이 남쪽이라 항상 푸르고 고요한 남쪽 바다에서만 생활하다가 군산이란 곳으로 발령을 받고 서해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12월달 서해 겨울바다는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아버지 일을 도우며 20년 가까이 배에서 멀미한번 하지 않던 제가 첫 출동 기간 중 멀미와 두통으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높은 파도와 너울....정말 서해 겨울바다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무서움을 모를 정도로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60년 가까이 배를 타시며 저와 동생을 키워주신 아버지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으로 견뎌냈으며, 어느덧 서해바다도 저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다......많은 사람들은 그저 가슴이 답답하거나 여행을 위해 바다를 찾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바다는 아버지의 삶과 저의 꿈이 담겨져 있는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그런 바다에서 아버지와 같은 어민들과 국민 모두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행복이었고, 바다는 제 삶의 전부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군대생활을 전경으로 하여 해양경찰에 대한 업무와 임무를 다른 사람들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해바다는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중국어선 단속, 황금어장이라 불리는 서해바다에 우리나라 조업구역을 넘어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경비정도 임무 중 불법 중국어선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양경찰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중국어선 단속에 대한 동영상을 많이 봤었지만 동료들간 팀웍이 맞지 않으면 생명까지 위험한 일이었기에 긴장을 한시도 늦추지 않았습니다. 단정에 승선하고 불법조업을 하고 있는 중국어선으로 다가갔습니다. 경찰장구를 착용하고 제일먼저 중국어선으로 올라가 조업을 하고 있는 선원들을 집결시키고 저항하는 선원들을 제압하였습니다. 다행히 큰 저항이 없어 어획한 꽃게와 생선들을 채증하고 선장을 경비정으로 승선시켜 검거하였습니다. 온몸엔 땀이 흐르고 4시여간의 긴장감속에 피로감은 두배로 늘어났지만, 처음 해양경찰관으로써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과 자신감으로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또한 단속도 중요하지만 항상 안전에 유의하고 동료들과 하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7월달…거칠고 험하던 서해바다도 남해바다 못지않게 잔잔해 지고 포근한 날이었습니다. 새벽 출동 당직 중 전복어선 신고를 받고 우리 경비정은 신속히 사고지점으로 향하였습니다.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의 사고는 생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신속한 사고처리 준비를 하며 전속력으로 달려가 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7톤가량의 어선 1척이 뒤집혀져 있었고 같이 조업을 하던 어선들이 주위에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지원을 하여 단정에 승선하였고 구조장비를 들고 전복어선 위로 올라갔습니다. 생존자는 없다는 생각을 모든 승조원들이 하고 있었지만 어선을 망치로 두들기며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잡기위해 선미 쪽으로 갔을 때 어선 안에서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급박함에 저는 어쩔줄을 몰랐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어선에 갇혀있는 선원과 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다행이 2명의 선원이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경찰서 특수기동대원들에게 구조지원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동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갇혀있는 선원들이 정신을 잃지 않도록 대화를 계속 시도하였습니다.

“아저씨 구조대원들이 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숨을 못쉴거 같아요. 살려주세요” 이렇게 저와 선원들과의 대화는 계속 되었습니다. 선원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저였기에 속은 더타들어 가고, 무전기를 통해 빠른 구조 요청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특수기동 대원들이 헬기를 타고 도착하였고, 잠수준비를 하고 바로 어선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10여분 뒤 기동대원 한명이 숨을 거둔 선원 한명을 안고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조금 전 까지 대화를 나눈 선원이라고 생각되어 너무나 안타까웠고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조심스레 숨을 거둔 선원을 시체포에 넣고 경비정으로 이송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10여분뒤 기동대원들이 2명의 선원을 호흡기를 착용 시킨체 물밖으로 같이 나왔습니다.

순간 기쁨과 안도의 생각에 두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않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구조된 선원들을 진정 시키고 함께 경비정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경비정에 올라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을때 집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거칠고 험난한 바다에서 반평생 배를 타시며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고마움과 앞으로 더욱 효도하며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위 친구들은 자기 부모님이 어업을 하시면 매우 싫어합니다. 항상 생선 비린내와 검게 탄 얼굴..그리고 몇일씩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부모님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일을 했음하는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부모님이 그 누구보다도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배를 타고 일하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제가 공부하고 지금까지 자라왔으며, 대한민국에서 제가 가장하고 싶고 제가 해야 할 일인 자랑스런 해양경찰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반평생 바다에서 생활하신 아버지의 사업…이제는 그 사업 제가 이어받아 바다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습니다. 모든 어민들을 아버지 어머니 같이 생각하며, 항상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고 생활 하겠습니다. 아버지…아버지 사업을 이어받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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