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사에게 넘어간 원료수송권 되돌려야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은 1905년 11월 20일자 신문 논설에서 일제의 강압적인 을사보호조약에 서명한 대신들과 일제의 首魁 이토 히로부미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비판했다. 을사조약에 의해 사실상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그런 만행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원한을 표현한 이 신문 사설의 제목 是日也放聲大哭(오늘이야 말로 대성통곡해할 날)은 아직까지도 자주 인용되는 문구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훨씬 지난 2012년 3월 6일 한국해운업계에도 정말로 是日也放聲大哭 해야 할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韓國電力의 자회사 한국동서발전(주)이 발전용 석탄에 대한 장기운송계약을 몰래 일본선사 NYK와 체결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국선주협회는 즉각 ‘동서발전의 장기수송권 해외 유출에 관한 해운업계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일본선사와의 장기운송계약을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동서발전’이라는 기업은 어느 나라 기업인가? 도대체 해운산업에 대한 인식이나 애정 같은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알량한 운임 조금 절약해 보자고 수송주권을 외국선사에게 팔아넘기는 ‘賣國적인 행위(업계의 표현)’를 했다니, 이것은 정말 분통이 터지고 눈물이 날 일이다. 더더욱 고약한 것은 동서발전과 같은 잘못된 행위가 이번 한번 뿐만이 아닌데다가, 한국전력 계열사들 뿐만 아니라 포스코와 같은 거대 기업들까지도 수송주권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행위를 서슴없이 해왔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국적선사들은 깊은 해운불황의 늪에서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위기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선사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이처럼 철면피 같은 처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적선사들이야 죽어나건 말건, 국익에 손해가 되건 말건, 운송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하여 회사에 도움이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기업의 경영자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장기운송화물은 선사들에게는 젖줄과도 같은 것이요, 이것을 수송하는 것은 우리 국민경제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애기가 영양실조로 죽음 앞에 서 있는데 살찐 남의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의 장기운송 대량화물을 수송하지 못하면 국적선사들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고, 그리되면 해운업계가 무너지고, 차례로 관련산업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또한 결국 수백만명이 실업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고용창출을 제1의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이 정부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이번에 장기운송계약을 따낸 ‘NYK 벌크쉽 코리아’는 아마도 자신들은 국적선사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국토해양부에 등록된 외항운송사업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국적선사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일본사람이 한국에 와서 집도 사고 회사도 만들고 하여 현재 살고 있다고 해서 한국 사람일 수 없는 것과 매 한가지다. 더구나 NYK 벌크쉽 코리아는 국적선사들이 결속한 단체인 한국선주협회도 가입돼 있지 않은 선사이다. 한국선주협회는 결국 ‘NYK 벌크쉽 코리아’가 국적선사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협회 가입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NYK측에 오래 전부터 남의 나라에 와서 장기운송하는 대량화물을 빼앗아가는 염치없는 짓을 제발 그만두라고 몇 번이고 강조해왔다. 또 한번 강조하는데, NYK는 분명히 일본선사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원료수송권을 획득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동서발전은 이점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당장에 잘못을 시정해야 만 할 것이다. NYK가 국적선사라고 우기는 것은, 그래서 입찰자격을 주는 것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혹자는 요즘 같은 개방화 시대에 뭐 그리 쇄국적인 얘기를 하느냐고 힐난할지도 모른다. FTA 체결 시대에 수송권 좀 외국에 줬기로서니 뭐 대수냐고 따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개방해야 한다는 명제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서 동시에 적용돼야 하는 명제이다. 따라서 일본은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다. 우리나라 국적선사가 일본 도쿄전력(東京電力)의 발전용 석탄을 장기수송 계약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 신니테츠(新日鐵)의 철광석을 우리 선사가 수송했다는 얘기 또한 들어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만 국민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용 원료수송권을 유독 일본선사에게 퍼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당국은 일본선사 ‘NYK벌크쉽 코리아’에게 내주었던 외항운송사업자 등록증을 회수해야 한다. 만약에 이것이 어렵다면 해운법을 개정해서라도 외국선사의 한국 현지법인은 별도의 외항운송사업자로 등록하도록 해야 한다. 동서발전을 포함한 한국전력의 계열사들과 포스코는 우선 어려운 환경에 처한 국적선사들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원료 수송의 입찰자 자격을 한국선주협회 가입회사로 한정시켜는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필요하다면 내부규정을 바꿔서라도 꼭 그렇게 하기를 권장한다.

해운업계는 당연히 들고 일어나야 한다. 是日也放聲大哭은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 해운인들에게 필요한 말이다. 마침 오는 3월 23일 서울 명동의 은행회관에서는 신해양수산부처 추진범국민운동전국연합(신해련) 결성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지금 해양수산부 부활 운동도 시급하지만, 그보다도 더 급한 것은 일본에 유출된 대량화물 장기운송계약(COA)을 되찾아 오는 일일 것이다. 3월 23일은, 찬탈된 원료수송권을 국적선사가 되찾아 올 수 있도록 총궐기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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