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조선소 살리기에 4조원 퍼붓는다는데...>

 조선 포함된 ‘해양산업’ 유동성지원 나서라

 리먼브라더스 쇼크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 경제위기가 시작된지도 벌써 4년이 다 돼 간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경제의 어려움은 풀릴 기약이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양상이다. 아니 오히려 유럽 경제 위기의 파장은 점점 더 거세져 암울한 막판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최근의 부정기선 해운시황은 이러한 세계 경제 사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할 해법은 아직도 찾아지지 않고 있다. 리먼 쇼크 이후의 세계 경제 침체가 ‘자본주의 부도덕성을 응징한 천벌’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금융계의 탐욕스러움은 아직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금융기관들은 고객에 대한 배려나 서비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 지키기에 더욱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정부나 금융당국도 금융부문에서의 모럴 헤저드 현상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를 못해 오늘날 더욱 어려운 지경에 빠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조선소들에게  9월부터 4조원 정도의 제작금융을 지원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16일 정책금융공사와 산업, 국민, 우리, 신한 등 민간은행들이 참여하여 총액 4조원 정도를 신조선 건조자금으로 조선소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통상 해외 수출용 선박의 건조자금은 수출입은행을 통해 지원이 되었지만 일반 민간은행들도 참가하여 그 규모를 대폭 늘림으로써 어려운 처지의 조선소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이같은 방침이 여러 가지 허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무엇보다도 지적해야 할 것은 조선소들에게는 4조원씩 지원하면서 수출의 선봉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해운산업에 대한 지원은 제로라는 점이다. 도대체 감독관청인 국토해양부는 무엇을 하였길래 이렇게 차별적인 조치를 당할 수 있는 것인지,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조선소에 대해 ‘제작금융’에 한정하여 지원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해외선주가 우리나라에 신조선 발주를 할 경우 계약서 한 장만 있으면 신조선 건조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얘기인데, 이것은 우리나라 해운산업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해운산업, 더나가 종당에는 조선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해운산업이 어려운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현재 더욱 처참한 상황인 것은 ‘오버토네지(선복량 과다)’ 문제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박을 더 건조하라고 저리의 자금까지 지원한다면 이것은 해운불황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터이고 중장기적으로 볼 때는 결국 조선산업 전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외국선주들에게 싼값에 좋은 금융조건을 제시하여 경쟁력 있는 船隊를 조성하게 해준다면 국적선사들의 강력한 경쟁자를 키우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어서 그 위해성은 더 크다,

물론 우리들은 이번의 조치로 민간은행들이 일사분란하게 조선소 지원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은행들도 자체적으로 신용평가를 하고 있는 이상 부실화된 조선소에 무턱대고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반면 우리나라의 소위 메이저 조선소들은 굳이 제작금융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정부의 기세 좋은 방침은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만에 하나 신용이 좋지 않은 조선소들에게까지 정책적으로 자금지원을 받아서 신조선들이 쏟아지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끔직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 번째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조선업을 단순한 제조업으로 보는 근시안을 버리고 미래 성장 동력인 ‘해양산업’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사고틀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선과 해운은 우리의 미래 경제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해양산업’의 양기둥으로서 동반 성장을 시켜 나가야 한다. 조선산업에 대한 관할이 새로 신설되야만 할 ‘해양수산부’ 혹은 ‘해양수산기후부’로 이관돼야 한다는 주장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조선과 해운 신기술에 대한 연구와 홍보를 촉진하기 위한 재단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출 장려를 위한 제작금융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함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조선업계와 해운업계가 함께 살아날 수 있도록 당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국적선사가 국내 조선소에 신조선을 발주할 경우 선박건조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조치는 해운 조선의 연계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어려운 해운업계 입장에서는 현재의 형편으론 신조선 건조 여력이 없으므로 우선적으로 시급히 유동성 공급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조선소가 살려면 전세계에 돌아다니는 선박 절반쯤은 까부수어야 한다”고 흔히들 업계에서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자면, 해운업과 조선업이 살려면 동아시아지역의 부실한 조선소 도크 모두를 메꾸어버려야만 한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현실을 직시해 주길 간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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