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한국해운 보고만 있을 것인가?>

 제2의 해운산업합리화 길로 나아가라 

한국해운은 지금 캄캄한 어둠 속을 지나고 있다. 도저히 앞뒤가 분간이 안 되는 어둠 속에서 동이 터올 새벽녘은 아직도 멀어만 보인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는 있으나 깊은 내상은 점점 확대되어 최후의 순간으로 몰아가고 있다. 해운인들은 간절히 간절히 누군가 새벽이 오는 닭 울음 소리를 들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누군가 훨훨 타는 횃불이라도 높이 들어줬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회사가 없어지는 바람에 자동 탈회한 국적선사가 모두 52개라고 한다. 또한 법정관리라는 피난처로 들어간 선사도 모두 10개라고 하니 62개사 문제가 생겨 도산했거나 갱생의 길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명단에는 안 들어있지만 현재 전화 연락이 안 되는 국적선사가 추가로 10여개사 더 있다고 한다. 이들까지 합치면 결국 70-80개 국적선사가 사실상 영업 불능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선주협회 회원 190여개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가 이미 간판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해운경영 위기는 개별선사의 문제가 아니라 해운업계 전반의 문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 국적선사들의 경영 위기 상황은 비단 그 숫자가 많아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종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도가 세다는 점도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벌크선사들의 경우 BDI 1000도 안되는 상황이 오는 연말까지 계속된다고 할 때 과연 버티어 낼 수 있는 선사가 몇이나 될까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선 내년 연말까지는 시황 회복이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고 보면 우리가 우려하고 경종을 울리는 것은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해운업의 최대 위기’라는 사실에 의외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해운업계 일각에서조차 뭐가 위기 상황이냐고 되물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또 일부 당국자나 업계 관계자들은 산업 가운데 해운업만 유독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점과 세계 해운 가운데 유독 한국만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내세워 한국해운을 살리자는데 반대하고 있다.

물론 최근 일부 근해컨테이너선사들과 한두 군데의 벌크선사가 비교적 경영이 순조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사들조차 부채비율은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하여 좋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나머지, 특히 벌크선사들 가운데는 하루 하루를 연명하기 조차가 어려운 선사들이 너무나 많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선사들 중에는 너무나 원리금 상환 유예와 일부 탕감을 받고도 견디기 어려워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선사도 있다. 해운산업만 어려우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부실조선소 살리기에 수조원씩을 지원하면서 어째서 국가 경제의 대동맥인 해운산업에 대해서는 한푼의 지원도 해주지 않는가?”라고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해운만 어려우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중국 COSCO나 프랑스의 지원 사례로 볼 때 우리가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같은 정도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결국 정부당국이나 금융당국이 해운산업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얼마만치 중요도를 인식하느냐 하는 점이 위기라고 인식하고 지원해 주느냐 아니냐의 척도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운산업의 중요성은 해운에 대해 웬만한 지식만 갖고 있어도 누구나 인정하는 것일 것이다. 세계의 강대국 중에 해운을 도외시하고 강대국이 된 나라는 없다는 점만 봐도 금방 알 수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정부는 단안을 내려서 한국해운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단행해야만 한다. 1980년대 중반 사상 초유의 해운 위기 상황에서 선사들간에 통폐합을 유도한 해운산업합리화 조치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해운이 세계 5대강국으로 발전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제 다시 제2의 해운산업합리화의 길로 정부당국은 과감히 나가기를 우리는 열망한다.

제2의 해운산업합리화라면 제일 먼저 유념해야 할 것은 국적선사 전체를 다 살리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합리화의 대상이 되는 선사들은 대부분이 벌크선사라고 봐야 되겠지만 이들 조차도 자생력이 있어서 지원조차 필요 없는 선사, 지원을 해줘서라도 살려할 선사, 가능한 빨리 정리하도록 유도해야할 선사로 나누어 부문별로 맞게 지원해야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명심할 것은 부실선사 정리는 은행권의 부실채권 정리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부채를 다른 선사로 떠넘기는 차원에서의 정리는 제1차 해운산업합리화가 실패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일이다. 일단 살려야 된다고 판단한 선사들에 대해서는 운전자금 뿐만 아니라 선박건조 자금까지 지원하여 미래의 경쟁에 대비하게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해운, 조선, 철강업계가 상생하는 모델을 제시할 때 여기에 과감한 지원을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정부당국이 금융당국을 설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고, 실제로 해운합리화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해운산업에 대해 조그만 애정이라도 있다면 정부당국은 단행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병이 깊어져 신음하고 있는 환자(선사)를 의사(정부당국)가 그냥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감을 잦고 환자에게 다가가 능숙한 솜씨로 수술에 임하는 믿음직한 의사를 해운업계에서는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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