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행복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몸과 마음을 낮추면 소박한 행복이 찾아온다.
잔잔하게 왔다가 안개처럼 사라진다.
또 말없이 찾아와 메마른 마음을 가랑비처럼 촉촉이 적셔준다.
나는 그것을 소박한 행복이라 한다.
돈과 명예, 권력을 거머쥐는 거창한 행복이 있다. 많은 사람이 그것들을 부러워한다.
정작 본인은 잠 못 이루고 근심걱정의 늪에 빠져든다.
어찌 그것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공무원을 퇴직했을 때 후배가 찾아왔다.
등산모임을 만들자고 했다. 흔쾌히 받아드렸다.
해양산악회란 문패를 붙였다.
가입기준을 해양계 학교를 졸업했거나 해운계에 종사하는 전 현직으로 규정했다.
지구면적의 70%가 바다다. 우리나라 면적의 70%가 산이다.
바다와 산을 아우른다는 의미의 해양산악회는 등산동호모임치고는 거창한 문패다.
더욱이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고 높은 곳은 모두 바다와 산이 있다.
그래선지 회원들의 호연지기가 넘친다.
대부분 대양을 항해하던 마도로스 출신이라 현실에 급급하지 않고 낭만적이다.
비좁은 땅에서 아옹다옹 다투지 않고 5대양을 항해하며 세계의 문물을 생생하게 호흡했다. 선진국의 찬란한 문명도, 후진국의 원시문화도.

망망대해에선 일엽편주에 불과한 초거대선박을 운항하면서 태풍이 몰아칠 때면 아가리를 벌려 집어삼키려고 달려드는 노도와 대결했다.
생사가 맞물리는 접경지대를 몇 번을 건넜다.
항구에 입항하면 긴장을 풀려고 뒷골목에서 분 냄새나는 속살을 탐하며 절제해오던 본능을 발산시기도 했다.
집 떠나 계절 몇 개를 지내고서야 아내의 편지를 받아보고는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봤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함락하고 돌아오다 동굴에 갇히고, 마녀의 부하가 되고, 요염한 노래에 유혹을 받으며 바다를 방랑했던 것처럼.

해양산악회는 봄과 가을 산행을 했다. 벌써 15년이 됐다.
봄에는 지방단위로, 가을에는 전국에서 2백여 명이 모인다.
일박이일 일정으로 청계산, 계룡산, 금정산을 돌아가며 산행이다.
부인들과 아이들도 참가해서 대갓집 잔치 분위기다.
지난번엔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도계인 대둔산을 등반했다.
절벽을 끼고 올라가는 가파른 바윗길이 버거워 케이블카를 이용하려했다. 매표소 직원이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한다 해서 별수 없이 걷기로 했다.
후배들이 친절히 보살펴줬다. 옛날 서로 아꼈던 정이 아직도 남아서일까.
오색단풍과 괴암절벽이 푸른 가을하늘에 치솟아 경관이 비경이다.
그 비경에 취해 젊은 날 열정적이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생각하면 그때 직무에 대한 열정은 의무가 아니고 특권이었다.
이제는 그 열정과 특권은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허망하게도…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뒤풀이에 들어갔다.
음식들이 꿀맛이다.
목포에서 가져온 홍어회에 막걸리가 으뜸이다. 전라도의 별미인 홍탁이다.
포항에서 올라온 전어에 소주는 흥치를 돋구웠다.
순천에서 온 시루떡은 넉넉한 포만감으로 기운이 치솟았다.
젊은이들이 주도해 여흥이 벌어졌다.
팍팍 튀는 노래와 춤은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어.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다. 내 젊은 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젊은이들의 발상은 기상천외였다.
나에게 노래를 청했다. 나의 18번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을 배호를 흉내 내어 불렀다.
후배들이 우르르 스테이지로 몰려와 나를 에워싸고 박수치며 합창하며 군무로 화답했다.
소박한 행복감에 저져들었다.

학문을 성취한 금자탑과 인공위성의 우주도킹은 위대한 행복이다.
그것은 서민들이 넘볼 수 없는 위인들의 영역이다.
허지만, 위인들도 가시밭길에서 소박한 행복이 순간순간 없었으면 위대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
소박한 행복이 있었기에 그 인생이 메마르지 않고 정진했을 것이다.
메말라버린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수 없듯이.
소박한 행복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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