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금융공사, 해운보증기금 보다도>

당장 해운금융 지원이 더 시급하다 

요즈음 금융당국과 해운당국에 의해 어이없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여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금융위는 한참이나 끌어오던 ‘정책금융 재정립 방안’을 발표하면서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안을 사실상 포기하고 말았다. 게다가 선박금융공사의 대안이라고 내세운 ‘해운보증기금’이라는 것도 내년 상반기까지 검토해 보겠다고 여유를 부렸다. 연내에 뭔가 이뤄지겠지 하고 기대했던 업계로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어찌 믿을 만한 당국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중환자실의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남의 금송아지’ 논쟁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서슬이 퍼런 금융당국, 아무소리도 못하는 해운당국이 엇박자로 돌아가고 있으니…

제발 정부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길 바란다. 정확한 현실 인식의 바탕 위에서 금융정책을 펴나가기를 호소하고 또 한다. 모두가 죽어나가는 마당에 '지원해야 된다, 안 된다'하는 논쟁이나, '일시적인 주사를 놓을 것이냐, 오래가는 보약을 먹일 것이냐'하는 논쟁은 한가하기만 하다. 솔직한 기분을 말하면 지금 당장에는 선박금융공사고 해운보증기금이고 다 필요없다. 당장에 넘어가는 숨을 틔워줄 돈줄이 필한 것이요, 지금 즉시 위기의 해운회사를 살려낼 수 있는 방책이 필요할 뿐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수혈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딱한 입장에 우리 해운업계가 놓여있다. 그만큼 우리 선사들, 한국해운 전체가 최대의 위기 상황에 와 있음을 우리는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사기업에 대한 지원은 곤란하다’든가 ‘WTO 제소 위험성이 있다’ 등등의 이유를 내세워 해운산업이 괴멸되는데 일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산업은 다 버려두고 유독 해운산업만 살려야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해운이 살아야 조선산업, 항만산업, 기타 물류전반이 살고, 국가 경제가 순환해  성장한다. 한국 해운이 모두 죽어서 외세에만 의존한다면,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처지에서는 엄청난 손실을 감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해운업 전반이 완전히 망가지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뻔한 결말을 알고서도 외면하는 비겁한 행동이다.

정부는 선박금융공사, 해운보증기금 설립을 논하기에 앞서서 우선 당장에 해운산업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책이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하고 과감하게 개혁적인 ‘해운정책’을 이제라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내년 상반기에나 설립할지, 안할지가 결정되는 해운보증기금을 믿고 해운업계가 얼빠지게 기다릴 그런 한가한 시간이 없다. 아주 지금 당장에 해운산업의 골간을 뒤흔들 충격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말처럼 한국해운은 곧바로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금융당국과의 정책적인 공조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해운당국과 금융당국은 머리를 싸매고 한국해운을 살리고 관련산업을 살리고, 한국의 경제를 위기에서 구할 보다 강력한 대책을 강구해 내야만 한다.

우리 업계가 정부당국의 정책방향을 가늠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1980년대 중반의 해운산업 통폐합을 경험했던만큼 그 당시 ‘해운재편 정책’에서 좋은 점만을 가져와서 새로운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먼저 그 당시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주문해 본다. 당시에는 업계의 자구노력과 통폐합에 따른 고통의 감수를 담보로 정부가 해운업체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했었다. 업계의 희생과 노력이 정부가 금융지원을 하는 구실을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업계의 희생과 각고의 노력으로 금융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운관련 금융기관의 설립보다도 먼저 해운산업 부활을 위한 기본틀을 만드는 것이 뭣보다도 중요하기에 당장에라도 획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내기를 정부에 주문한다. 그 연후에 선박금융기관 문제를 논의해도 늦지는 않다고 본다.

만약에 지금 당장 해운산업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국가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끝내 우리 해운업이 패망의 길로 간다면 대통령의 공약사항 대로 해양수산부를 부활시켰던 그 뜻과 업계 관계자들의 그 열성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리 되면 말할 것도 없이 해운정책도 필요 없을 것이요, 따라서 해양수산부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대통령께서는 이제 해운산업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이하여 위기 탈출 대책을 직접 챙겨주시기를 우리는 주문한다. 복지, 복지를 외치기 보다 실질적으로 특수한 산업을 지원하고 이끌어 줌으로써 한국경제의 동맥경화증을 미리 예방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개발해 주기를 청원한다.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주시기를 염원하는 것은 당신께서 직접 해양수산부 신설과 해양부문에 대한 지원을 공약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四海躍進이라는 휘호를 써가며 해운산업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셨던 선친 박 대통령의 유업이 그대로 현 대통령에게로 이어지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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