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당국에 드리는 마지막 호소문>

대한민국의 해운산업이 최대의 위기에 몰려 있다. 일각에서는 외항해운산업이 終焉(종언)을 고했다고까지 말한다. 대한민국의 5대 국적선사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두 정상 경영궤도를 이탈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최근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근해항로 컨테이너선사들과 몇몇 COA를 가진 벌크선사들이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지만, 대한민국 해운 전체가 막판에 몰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5대선사들이 대단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다가 나머지 선사들 상당수도 위기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몰락은 결국 한국해운의 패망으로 연결될 것임이 자명하다.

우리의 자랑이었고 핵심 축이었던 5대선사들을 살려내지 못하고, 그래서 한국해운의 신용도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황과 문제점을 알고 있음에도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요, 복지부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부당국은 물론이고 민간 기업까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대책마련의 첫 단계는 급박한 위기상황을 인정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것이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해운이 백척간두에 서 있음을 실토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해 국민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펴줄 것을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건 이후 국적선사들 상당수는 부실채권의 존재를 쉬쉬해가며 금융권의 신뢰 얻기에만 급급하는 바람에 부채규모만 키워왔다. 이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은 부실이 많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은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만 한다. 과거 국토해양부에서는 아쉽게도 해운 불황 해결을 위한 TF팀을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해 놓고도 시간만 보내다가 유야무야 없애버렸다. 과거 80년대 중반에는 해운정책 당무자들과 국적선사 기획실 요원들이 함께 모여 철통보안 속에서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을 수립해 우리 해운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 때보다도 더 사명감이 있는 인재들이 모여 강한 결속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지 않으면, 우리 해운산업의 위기 상황은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가칭 해운산업합리화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면 이 위원회에서 한국의 해운산업 재건을 위한 대책들을 내놓겠지만 우리로서는 우선 몇가지 생각하는 것들이 있기에 먼저 이를 건의하고자 한다.

현재의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해운업계의 재편(새판짜기)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근해항로의 소형 컨테이너 선사들이나 특수화물을 취급하는 선사 등은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원양 컨테이너선이나 일반화물선, 벌크선을 가지고 있는 선사들은 과거 80년대 중반에 했던 방식대로 재편 혹은 선사간 통폐합을 유도해 그 수를 줄여야 한다. 특히 원양 컨테이너부문을 1개사로 통합하는 방안이 시류에 맞는 정답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벌크선사들도 자연스럽게 부채 탕감 내지는 축소를 전제로 통폐합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해운산업의 구조개편은 우리 은행들의 손실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해운 비상상황에서는 은행들도 일정정도의 손실을 보지 않고는 해운 전체의 부실만 키울 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처럼 부실 선사의 부채에 다른 부실 선사의 부채를 덮어씌우는 식으로 선사간 통폐합을 해서는 해운산업이 되살아날 수가 없다.

부실 해운기업의 사주나 경영자는 私財를 털어 넣어서 자구계획을 실천해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한 최고책임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물론 이 경우 오너십이나 경영권이 바뀔 수도 있는 문제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대형 국적선사는 공기업화로 방향을 트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오너의 지분을 완전히 줄이고 국책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이나 대형하주, 대형조선소, 종합무역상사 등이 주식지분을 나누어 갖게 해 公기업 내지는 국민기업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현재 대형선사들이 갖고 있는 부채를 부분적으로 출자전환해 자연스럽게 공기업화를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사모펀드의 참여 등은 더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다.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주로서의 역할만 하고 경영은 진정한 해운 전문가가 책임을 갖고 하게 된다면 훨씬 더 좋은 실적을 올릴 수가 있을 것이다.

정부는 업계 재편을 유도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새로운 외항운송사업 면허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많은 업체들이 외항운송사업자로 등록해 한국해운이 어렵게 된 일면도 있기 때문에 외항운송업체 수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을 이번에 분명히 찾아야 한다.

해운 새판짜기(재편)가 완성되면 정부는 해운업계에 대대적인 자금 지원을 해야 한다. 우리의 국적선사들과 국제경쟁을 벌이고 있는 덴마크, 프랑스, 독일, 중국 선사 등은 정부로부터 각각 수십억에서 수백억 달러까지의 지원들을 받고 있는데 우리만 손을 놓고 있어서 위기가 가중됐다는 것이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분석이다. 관련 은행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해운산업 전체를 살리는 것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정부가 설득해야만 한다.

백번의 말보다도 한 번의 실천이 중요하다. 무지개 피어나는 앞날의 청사진보다도 지금 당장 한술의 밥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는 해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TF팀을 구성해 당장에 위기해결책을 내놓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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