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관제도 개선을 위한 진언>

화물 밀반출사고 방지 대책 촉구한다 

수입화물의 대형 밀반출 사고가 한 달이 멀다하고 터지고 있지만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해운업계에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선주협회,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 한국국제물류협회 등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답답하기만 하다. 수입화물의 밀반출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이 관세청의 법규(보세화물관리에 관한 고시)에 명시된 선사의 의무규정과 선사의 운송행위 종료시점을 보세창고에서 하주에게 화물을 넘기는 순간까지로 보는 대법원 판례 때문인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1990년대에는 주로 수입 컨테이너화물의 밀반출 사고가 많아서 해운대리점업계가 아주 큰 고통을 겪었으며 포워딩 B/L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 포워딩업자들까지도 골치를 썩여야만 했다.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나열해 보아도 동원실업 사건, 금하방적 사건, 경일화학 사건 등이 일어났다. 그 후 2003년 10월에는 페타코 사건이 터졌는데 이 것은 유류화물의 밀반출 사고로 사건 피해액이 2000억 원대에 이르는 대형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 상당수의 탱커선사들이 연관이 되어 파산하거나 회사의 명패를 내리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 밀반출 사고는 주로 일반 벌크화물에서 일어나고 있다. 컨테이너화물이나 유류화물의 경우는 워낙 자주 일어난데다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었고 선사들과 창고업자 등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 결과 사고가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철제류 등의 일반 벌크 수입화물의 경우는 아직도 밀반출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고 최근에 태영상선 사건이 터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게 부각됐다. 이렇게 보면 1990년에 컨테이너화물 밀반출 사고를 시작으로 그 다음엔 대형 유류화물, 이번엔 일반 벌크화물로 대형 밀반출 사고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보세창고에 있는 수입화물을 창고업자와 수입업자가 결탁해 밀반출하여 팔아먹고, 수입 대금 결제도 안하고 도망갈 경우 운송인인 선사가 100%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는 우리의 법제도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선사의 죄라면 화물을 운송해 준 것 밖에 없는데, 사라진 화물 값을 모두 변상하라고 하면 그처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얼마 안되는 운임을 벌기 위해 애를 썼는데 불법적인 사고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변상해야 한다면 아마도 그런 화물을 운송하겠다고 나설 선사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상법과 대법원 판례에서 실제의 운송행위 종료를 수하인(수입하주)에게 화물을 넘겨주는 순간까지로 보고 있는 점에 있다. 선사로서는 화물을 하역하여 창고로 이송하면 화물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상실됨에도 불구하고 “창고업자도 어디까지나 운송인의 운송행위를 돕는 ‘이행보조자’”라고 보는 시각 때문에 수중을 떠나 창고에 입고된 화물에 대한 책임을 선사가 져야하는 불합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을 판례에서는 ‘운송인과 창고업자간에 묵시적인 임치계약이 성립됐다고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선사(운송인)의 책임은 화물이 창고를 떠나 하주에게 넘겨지는 순간까지라는 얘기이고, 그렇다면 선사가 이런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창고를 직접 운영하든가 아니면 창고를 지키는 인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은 관세청의 보세화물관리에 관한 고시와도 관련이 있다. 이 고시 제4조에 “선사는 하주 또는 그 위임을 받은 자가 운영인과 협의하여 정하는 장소에 보세화물을 장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마치 선사의 책임 범위가 창고에까지 확대되는 것처럼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선사가 수입하주로부터 원본 B/L이나 화물인도지시서(D/O)를 제시받지 못했을 때는 창고를 선사가 원하는 대로 지정해버리는 쪽으로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수입화물 밀반출 사고에 따른 선사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관과 관련된 우리 법제도의 불합리를 고쳐서 선사들이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의 대법원이 창고업자를 운송 이행을 위한 보조인으로 보는 소위 ‘임치계약론’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고 있다. 만약에 묵시적으로 계약한 것이라면 당연히 실제로 선사가 창고를 지정해야 마땅한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는 그에 대한 책임도 질 수 없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려면,1970년대초에 수출입 간소화라는 명목 때문에 사라졌던 D/O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B/L 소지자의 권한을 지나치게 강하게 보는 법원의 판례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B/L 소지자가 누구건, 어떤 거래 관계였든 불문하고 B/L을 제시하면 화물가액을 물어내든가 물건을 내놓아야 한다고 하면 수입업자와 수출업자가 서로 공모하여 고의적으로 사고를 냈을 경우는 고스란히 선사가 당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결제기간이 너무 늦은 L/C는 초기단계에 은행이 발행하지 않도록 제도화해야 하며 설사 발행이 됐다고 하더라도 B/L의 효력을 부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밖에도 관세청에서 보세창고업체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보세장치장 설령인이 반출사고를 일으켰을 때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국적선사 피해를 막는 대책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보세창고업자들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여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보상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당국과 한국선주협회, 관련 단체들은 이 문제를 좀 더 심도있게 논의하여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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