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신선박 박호건 사장(해운경영학 박사)

“국제물류·금융질서 왜곡방지위해 조속히 시정돼야”

1. 서언

▲ 동신선박 박호건 사장
자원부족국가로서 무역의존도가 지대한 우리나라는 그간 계속된 경제성장으로 이제는 연수출입 무역고 1조 달러를 초과하는 무역대국이 됐으며 다수 다량의 원자재를 포함해 5천억 달러가 넘는 수입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무역증진을 위해 각종 무역거래, 외환, 통관, 운송 등 관련 많은 규정들이 보완하거나 수정, 폐기함으로써 원활한 수출입물류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수입화물 인도와 관련해서는 적절한 제도 및 규정 미비와 이해 관계자의 과오로 해상운송인들이 일부 수입업자의 계획적인 화물인도사고로 많은 손해를 보아 왔다. 아직도 수하주의 편리를 위해 규제 철폐와 보완된 제도 등을 악용한 후진국형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입화물 인도와 관련된 사고가 언제까지 계속돼야만 하는가? 화물인도 사고는 정상적인 국제물류의 흐름과 국제금융거래 질서를 왜곡 또는 지연시키기 때문에 정부가 해운업계, 관련기관들의 협조해 과감히 시정 보완해야한다. 현재 수입화물 인도 사건의 문제점을 점검해 보고 그 대책을 논하고자 한다.

2. 컨테이너 수입화물 밀반출
컨테이너 수입화물은 통상 하주가 보세장치장 또는 하주가 지정하는 보세장치장까지 보세운송된 후 적출된다. 그러나 과거 창고업자와 수입업자가 공모해 화물을 해상운송인의 동의나 화물인도지시서(Delivery Order ; D/O)없이 임으로 반출해 해상운송인이나 선의의 선하증권 소지자가 피해를 보는 사건이 발생했고 법정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사들은 보세창고 또는 장치장 설영주에게 선사의 D/O 징구없이 화물을 반출하지 않겠다는 공증각서를 요구하고 사고시 창고주에 그 책임을 전가하려 했지만 사법적인 의무조항이 아니어서 결국 선사 피해로 귀착되곤 했다.

그러나 현재는 선사들의 거듭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세관이 지정한 컨테이너 하선장소, 즉 선박이 접안하는 터미널에 장치돼 선사가 수하주로부터 B/L 원본을 회수하거나 은행이 발행한 화물 선취보증서(L/G)를 받고 해당 운임과 제비용을 영수한 후 선사가 승인한 D/O나 전자화물 인도지시서(E-D/O)가 있어야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반출될 수 있어 인위적인 사기행위로 공모하지 않는 한 사고의 우려는 없어졌다.

다만 대부분 터미널들이 D/O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케이엘넷이 운영하는 PLISM서비스를 이용해 선사나 지정된 위탁 운송사들이 터미널에서 바로 컨테이너 반출 오더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실상 하주에게 인도행위가 이루어져 전산에 의한 인도지시전 세심한 확인과 계약운송사에 화물반출 오더 대행을 위임한 경우 주의의무 소홀이나 공모 사고시 확실한 책임 전가를 위한 계약이 사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국내 컨테이너 터미널은 과거 재래식 화물인도가 계속되고 있어 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3. 벌크 수입화물 밀반출
컨테이너와 달리 양하된 수입화물을 전용터미널이나 부두에 장치할 수 없는 철재류 등 건축자재, 금속원자재, 액체화물 등 일반 벌크화물들은 대부분 수하주가 지정한 보세장치장으로 운송돼 장치된다.

선하주간 운송계약 원칙을 준수하려면 해당 화물이 양하전에 선하증권 회수와 제운임 및 비용 등이 완결돼야 하지만 화물이 적재된 선박을 항만에 체선 시킬 수 없는데다가 항해가 단거리인 일본, 중국 등 아시아지역에서 선적돼 수입되는 산적화물들은 은행을 통한 금융결재 행위가 이루어지기전에 본선에서 양하돼 하주가 지정한 보세장치장으로 이동되고 있다. 사실상 화물이 선하증권을 발급한 운송주체인 선사로부터 점유이탈 상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하주의 신속한 통관 편의를 위해 관세청 통관서류중 선사의 D/O 제출도 오래전 폐지됐고 관세 관련법규에도 보세장치장 설영인에게 보세화물 출하시 선사 D/O를 징구해야만 하다는 의무규정이 없다. 이에 따라 수입화물 대금결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선하증권 원본이 회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입업자와 창고업자가 결탁해 화물을 무단 반출하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최근 사고가 발생해 법정소송이 진행 중인 한 사건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해 4월 한국 수입업자인 H스틸은 일본 수출업자인 N사가 L/C 조건부 수입 계약을 체결하고 철근 약 3000 톤을 국적선사인 T선사 선박을 이용해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선적해 인천항으로 운송했다. 이 수입 철근은 인천항 도착후 FIO(하역비 하주 부담) 하역조건으로 H스틸이 지정한 하역회사겸 보세 창고업자인 C사가 양하해 즉시 보세창고에 입고됐다.

T선사는 일반적인 수입화물 보세창고 입고 관행에 따라 창고업자 C사로부터 ‘선사 D/O나 동의 없이 화물을 인도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 놓았다. 그러나 C사는 각서를 무시하고 H스틸의 끈질긴 요청으로 수차례에 걸쳐 수입 철근 전체를 반출시켰다. H스틸은 이를 국내업자에게 매각하고 대금을 챙겨 은행에 결제도 하지 않은 채 대표가 중국으로 잠적해 버렸다.

물품이 창고에 보관돼 있는 줄로만 알고 있던 T선사가 물품의 밀반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개월후 일본 수출업자 N사로부터 선적된 화물에 대해 선하증권(B/L) 원본 회수후 화물인도를 했는가라는 문의가 와서 창고 현장을 방문한 후였다.

이에 따라 선하증권 원본을 소지하고 있는 일본 수출업자 N사는 물품대금 전체(약 1억 7천만 엔)를 B/L 발급선사인 T선사에게 변제를 요청해 소송이 진행 중이다. 동시에 T선사도 수입물품을 무단 반출한 수입업자 H스틸과 창고업자 C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H스틸은 거의 파산 상태고 C사는 이미 회사문을 닫은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이 사건의 내용을 더 상세하게 파악하고 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과거 유사사건들의 판결을 살펴보면 일단 운송인(선사)은 발급한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않고 운송물을 인도한 행위는 선의의 선하증권 소지인의 운송물에 대한 권리 침해로서 불법행위이며 책임을 져야한다.

따라서 운송인은 일단 선의의 B/L 소지인에게 모든 보상을 해줘야한다. 해당화물의 불법인도에 따른 이해 관계자들과 손해배상 또는 법적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이 파산하거나 도주한 상황이기 때문에 선사가 그 손해를 부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4. 운송서류 위조에 따른 피해
위조B/L이나 위조L/G 등 운송서류를 위조한 화물인도 사고로 선사가 큰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양하지 선사나 대리점이 원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된 B/L이 제출돼 담당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D/O를 발급, 화물이 인도돼 운송선사가 피해를 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B/L 원본에 비밀인식 표지나 세심한 점검으로 사고가 미연에 방지되고 있다.

독자분들은 지난 1988년 7개 은행의 L/G양식을 입수해 정교하게 위조한 후 국내 20개 해운회사와 해운대리점으로 부터 74회 걸쳐 약 900만 달러 상당의 구리봉과 알루미늄판을 인도받아 처분하고 잠적한 희대의 동원실업 사건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 사건 이후 B/L원본 소지인인 각 은행과 해당선사들이 연합해 2년여에 걸쳐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진행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않고 운송물을 인도한 행위는 선하증권의 정단한 소지인(bona fide holder)에 대한 권리침해로서 불법행위이며 보증도나 어떠한 서류에 의해서 B/L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운송물을 인도한 경우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운송인은 B/L 소지인인 은행 측에 70%를 보상하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은행의 L/G 양식관리 및 거래처의 신용관리 소흘 등을 들어 은행의 30% 과실만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영세한 많은 해운대리점들이 불법행위로 연루돼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했었다.

동원실업 사건후 선박회사와 은행은 수차례 협의를 거쳐 L/G 통일양식을 제정하고 발급 L/G의 진위 여부 확인절차 등을 보완해 현재는 잘 진행되고 있지만 의도적인 사기행위에 당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5. 수입화물 밀반출 방지 대책
위에서 살펴본 사례중 특히 벌크 수입화물의 밀반출 사고의 경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여러 가지 문제점과 대책들이 거론됐지만 아직까지 수입화물 통관, 인도와 관련된 법규들이 이해당사자들의 공평성 원칙에 입각해 실직적으로 원활한 국제물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정되거나 보완되지 않고 있다. 더 면밀한 검토와 연구가 요구되지만 반복되는 화물인도 사고의 방지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지 대책을 제의해 본다.

첫째, 화물 통관시 운송인(선사)의 반출동의서나 D/O를 보완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전체 수입화물이 어렵다면 컨테이너 수입화물을 제외한 화물의 통관에 우선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사실 1970년 7월 통관시 관세청의 D/O 제출제도 폐지는 일방적으로 하주와 관세청의 편의에 의해 이루어졌고 보세장치장과 보세운송인, 해상운송인의 채권확보 등의 의견수렴 조정· 보완이 없었다. 따라서 수입화물의 점유와 관련해 이해당사자간 불편한 관계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다수의 운송인이 연류된 대형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

둘째, 세관의 허가로 보세장치장(보세창고)에 입고된 화물은 관세법에 의거 하주 또는 반입자가 책임진다고 돼있는 바 화물의 창고 반출시는 필히 운송인인 선사의 D/O를 징구하도록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불이행시 창고 설영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보세창고 설영허가 요건도 창고주가 화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담보 또는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강화돼야 될 것으로 본다.

셋째, 수입업자(하주)가 화물의 양하전 또는 화물이 운송인의 사실상 점유를 벗어나기 전에 운송인으로 부터 화물인도지시서를 받지 못하는 경우(특히 운송인의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에 장치할 수 없는 화물에 대해서는) 하주의 지정 대신 운송인 선박회사의 지정 보세장치장에 해당화물을 장치할 수 있도록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6. 결언
위 제의중 한가지라도 보완된다면 운송인이 화물의 무단이탈을 방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래전 관세청 담당관과 토론하면서 위와 같은 제의를 한 적이 있으나 화물의 인도문제는 수송인과 하주 사이의 민간 문제이지 행정청이 관여하거나 법제화할 문제는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제물류 현장에서 수입대금도 결제되지 않은 물건이 정상적으로 세관 통관을 거쳐 보세창고에서 반출되고 있고 해상수송을 담당하고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이 고스란히 그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봐야만 하는가?

또한 정상적인 외국의 수출업자나 결제은행이 운송인의 선하증권을 소지하고도 위와 같은 견제 없는 밀반출로 물품대금이나 화물을 확보할 수 없고 계속해서 법정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자유무역시대에 원활한 국제물류유통이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

수입화물 밀반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수입화물 전체의 대금결제, 통관, 인도절차와 관련 제반 문제점들을 국제물류의 흐름과 금융거래의 왜곡, 지연이 없도록 타선진국의 관행과 법률체계 등을 참고해 전면적으로 검토 분석해 제도적 보완해야만 한다.

관세청 등 정부당국도 화물 유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이해당사자간 불편한 관계가 초래되지 않도록 무역대국에 걸맞게 수입화물 인도 제도를 글로벌 수준으로 조속히 개선되도록 노력해야한다.

※동신선박 박호건 사장은?

박호건 사장은 충북 제천 출신으로 충남고등학교, 부산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동서해운(주)에 입사해 40여년간 해운물류업에 종사해왔다. 서울외대에서 해운경영학 석사,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해운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동신선박 대표이사 사장과 한국해운대리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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