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 매달리다 선량한 기업 다 죽인다>

정부는 최근 대형하주가 구조조정 중에 있는 해운회사를 인수해 외항화물운송사업(해운업)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난 3월 6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에 사모펀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한편, 해운기업의 M&A에 대형하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대형하주들이 맘만 먹으면 해운회사를 인수해 당당히 국적선사 오너로서 한국선주협회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대형하주들의 외항해운업 참여 문제는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한 대형하주의 해운업 참여로 인해 ‘인더스트리얼 캐리어’ 유해론에 대한 논란이 격화됐으며, 2005년 이후에는 대형하주들이 가지고 있는 정책적인 대량화물(대종화물)의 외국선사 유출 문제가 논란을 가열시켰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대량화물 하주의 해운업 진출 문제로 국회에서까지 세미나가 열리는 등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대형하주들은 끈질기게도 ‘내 화물은 내가 나르겠다’는 ‘自家貨物 自家運送’의 주장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마침내 정부가 대형하주들의 해운회사 인수를 승인했으니 ‘소원성취’를 한 셈이다.

물론 청와대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형하주가 지금 당장 해운업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더구나 자가화물의 30%만 수송하도록 제한된다고 하니, 대형하주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계산을 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아웃소싱이 대세인 이 시대에 이런 문어발식 기업 확장이 과연 효율성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여하튼 대형하주들이 너도나도 해운업을 하겠다고 나서게 된다면 대한민국 해운은 산업으로서의 소명이 종식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다.

우리가 대형하주의 해운업 진출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결같이 “인더스트리얼 캐리어가 많은 해운기업들의 간판을 내리게 하고, 결국 해운산업을 피폐화 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결국은 자생적인 비효율성 때문에 인더스트리얼 캐리어 스스로도 멸망하게 되고, 이것이 결코 해운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인더스트리얼 캐리어는 가만히 있어도 실을 물량이 있기 때문에 소극적인 영업을 할 수 밖에 없고, 업무개선이나 비용 절감 노력을 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조직은 관료화되고 경직화되어 결국은 업무의 비효율화와 경비의 증가로 인해 자생력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인더스트리얼 캐리어가 망한 예는 포스코의 계열회사 형태로 탄생을 했다가 한진해운 그룹으로 넘어가서 결국은 문을 닫고 간판을 내린 ‘거양해운’에서 찾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 거양해운이 탄생한 당시에도 인더스트리얼 캐리어 탄생을 해운업계에서 용인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결국 포스코가 외국에서 수입하는 철광석과 석탄을 전문으로 나르는 인더스트리얼 캐리어가 탄생하기는 했지만, 20여년 후에는 우여곡절 끝에 완전 정리되어 그 이름이 해운업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포스코가 거양해운을 포기한 것은 결국 ‘인더스트리얼 캐리어’가 업무의 비효율로 인해 비용만 잔뜩 늘리는 결과가 됐기 때문일 것으로 우리는 본다. 그러나 포스코는 아쉽게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해운업 진출을 모색해 2011년 8월에 계열회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을 통해 해운회사를 인수함으로써 또 한번 ‘해운업 우회 진출’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외국의 대형하주들의 경우 일부 자가화물을 자가운송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제3의 해운회사를 이용하고 있다. 복합운송을 주로 하는 일반적인 물류기업들의 경우도 자가화물을 자가운송해 대형 물류업체로 성장한 경우는 그 예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세계 10대 물류회사들의 경우는 타인의 화물을 전문적으로 운송하는 소위 3자물류업체들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운송분야 뿐만 아니라 생산분야에서도 외국의 유명기업들은 자신의 전공 분야 이외에는 아웃소싱을 주어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협력업체는 분명 있지만 자신의 계열회사를 시켜서 협력업체가 하는 일을 빼앗아 가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해운기업들이 어렵다고 해서 이를 기화로 대량화물 하주가 해운업에 진출하도록 허용하거나 심지어 장려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정책이라고 우리는 본다. 포스코나 한국전력과 같은 대형하주가 해운회사를 직접 경영해 자가화물을 자기 선박에만 운송한다고 할 때, 종전까지 이들 회사의 화물을 수송해 왔던 선사들은 경영파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가화물 운송 선사도 결국은 비효율과 비능률, 코스트 증가 등으로 인해 대형하주에게 결국은 피해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해양수산부는 자가화물 운송선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량화물의 30% 범위내에서만 운송하게 제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방침은 그냥 구호에만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규제 완화’만이 경제성장을 불러오는 원동력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산업의 특질에 따라서는 때로는 독점화에 의해 형성된 거대자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위 기간산업과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그러한 분야라고 판단되는데, 해운이야말로 경제의 대동맥인 기간산업이라는 점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대형하주의 해운업 진출에 의한 특정항로에서의 수송권 독점은 동맥경화와 같은 골치덩어리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했으면 한다. 정부는 규제 완화만을 찾다가 많은 관련 기업들을 몰살 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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