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이것도 生命인데

친구들이랑 식물원엘 갔다.

오만가지 식물들이 ‘날 봐’란 듯 그 자태가 아름답고 신비롭다. 안개 낀 내 가슴이 훤하게 밝아온다.

식물원을 나오는데 관람객들에게 애기 손가락만한 화초 한 포기가 심겨진 플라스틱 화분을 하나씩 나누어준다. 조잡해, 아예 받지 않는 사람도 있고 받았다가도 쓰레기통에 버린다.

나는 ‘이것도 생명인데’란 생각이 들어 버리질 못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간간이 물을 준다. 화초가 창 너머 해를 바라본다. 머리를 안쪽으로 돌려놓고 사나흘 지내면 창 쪽으로 다시 돌린다. ‘이것 봐라’하며 또다시 머리를 안쪽으로 돌려놓는다. 말 못하는 여린 식물에게 몽니를 몇 번이고 부린다.

‘심술쟁이 내가 되게 밉지?’라 물으면 ‘아니, 운동시켜 줘 고마워. 목마를 때 물도 먹여주고’란 대꾸가 뜻밖이다. 이러다 은연중 정이 든다.

봄이 왔다. 분갈이를 해 주려고 꽃집엘 데려갔다.

꽃집 아주머니께 “이 화초 이름이 뭐지요?”라 물으니 “잎이나 줄기에 많은 수분을 머금고 있는 다육식물(多肉植物)인 흑법사입니다”란다. 그의 고향이 스페인이란 것까지도 알려준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 세 계절을 함께 살았는데도 그의 이름도 근본도 몰랐다. 무심하게 보았는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흑법사에게 ‘미안해’란 한마디로 얼버무린다.

꽃집을 나오는데 풍란이 보인다. 멍하게 한참 바라본다. 아주머니가 “풍란이 마음에 드세요?”란 소리에 깜짝 놀라 “아니요”라 대답하곤 꽃집을 나온다.

14년 전, 며느리가 귀국해 몸을 풀었다.

며느리에게 안방을 내어주고는 병풍을 둘러치고 산모와 애기가 무탈하도록 돌봤다. 백일을 지나고서 제 아비 곁으로 돌아갔다. 집안이 텅 빈 듯 허전했다. 손녀의 배냇냄새가 코끝을 간질거리는 안방 구석구석을 더듬다가 평풍 뒤 쪽방 문을 열었다. 서랍장 위에 풍란이 보였다.

‘아차!’하며 감전이나 된 듯 몸과 마음이 뻣뻣해졌다. 백일이 지나도록 풍란을 깜박 잊고 지냈다. 풍란이 메말라버렸다. 몇 번이고 물을 주며 살아나기를 염원했으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 풍란은 내가 은퇴를 할 때 아끼던 직원이 “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라며 준 선물이다.

목마르다고 얼마나 애원했는지 몰라.
손녀가 자면서 웃고 찡긋거리며 배냇짓하는데 정신이 팔려 못 들었지?
배냇냄새에 취해 내 같은 미물의 생명은 하찮았던가!란 풍란의 절규에 나는 한마디 대꾸도 못한다.

꽃집을 다시 찾았다. 현무암 조각에 뿌리를 내린 풍란이 옛 풍란과 너무 닮았다. ‘네가 환생했니?’라 묻고는 집으로 데려온다. 흑법사가 풍란을 보고 ‘혼자 심심했었는데’라며 반긴다.

고적했던 서재가 훈훈해진다. 밖에서 돌아오면 날 반겨주는 이 아무도 없는데 풍란과 흑법사가 ‘왜 인제와. 얼마나 기다렸는데…’라며 반긴다.

컴퓨터에 매달려있으면 ‘이제 그만하고 우리 함께 놀자!’라며 조른다. ‘잠깐만’하곤 하던 일을 끝내곤 되돌아보면 환하게 웃는다.

풍란과 흑법사는 나에게 흙에도 바위에도 공기에도 생명이 숨 쉬고 있음을 깨우쳐주었다. 여태 그걸 모르고 살았으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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