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교수(한국해법학회 회장, 고려대 로스쿨교수)

▲ 김인현 교수
지난 몇 년동안 세계정기선시장에서 컨테이너 선박의 공급량(선복)이 실어나를 물동량에 비하여 넘쳐나고 있다. 이는 호황기에 비하여 운임을 반토막 이상으로 떨어뜨려 머스크라인 등 세계 원양정기선사들의 적자폭을 크게 하여왔고 결국 한진해운의 파산을 몰고 온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운임은 화주들이 제공하는 물동량과 선주들이 제공하는 선복에 의하여 결정된다. 현재 세계정기선 선복은 대략 2000만teu이다. 그런데 2016년 전체선복의 8%에 해당하는 150만teu의 선복(5천teu급 선박이라면 300척에 해당)이 운항을 중단하였다. 그럼에도 선주들은 컨테이너 발주를 계속하여 2016, 2017, 2018년 3년간 477척, 360만teu가 시장에 나오게 된다. 이는 현재 선복의 18%에 해당한다. 폐선될 선복을 감안하더라도 적정수준보다 약 15%정도는 선복초과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세계경제의 저성장이 지속되어 물동량의 증가는 미미할 것이므로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니 저운임은 지속될 것이고 해운불황이 예견된다.

바다의 고속도로의 기능을 하는 정기선 해운을 살리기 위하여는 운임이 회복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초과선복을 줄여나가야 한다. 선복량 조절을 위하여는 한 국가가 아닌 국제적인 공조체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신조를 하지 않아도 중국에서 신조를 하게 되면 선복은 증가하게 되고 이것이 전체 세계해운시장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만성적이고 주기적인 해운불황을 해소하기 위하여 선박의 수급을 조절하는 국제공조체제를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왜 우리나라가 앞장서야하는가? 우리나라가 가장 절박하면서도 한편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1년 조양상선에 이어 2017년 한진해운을 다시 잃어버리게 되었다. 우리 수출입화물의 운송 뿐만아니라 3국간 운송으로 연간 수조원의 외화를 벌어오는 우리 원양 정기선사를 더 이상 잃어버려서는 아니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선박건조 세계1위, 선박보유량 세계 6위, 물동량 10위에 더하여 활발한 선박금융을 제공한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유경제체제하에서 선복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컨테이너 선박을 이용한 정기선 해운은 수출입화물의 정시(定時)도착을 보장한다는 공익성을 가지고 있다. 세계 무역을 위한 고속도로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도로가 무너지고 막혀있으면 차가 달릴 수 없듯이 정기선운항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세계 무역이 멈추게 된다. 선복량이 적절하게 조절되어 정기선사들이 도산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송업에 종사하도록 산업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화주를 비롯한 무역종사자들에게도 바람직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법에서도 산업의 합리화 혹은 불황의 극복을 위한 공동행위는 일정한 조건하에서 허용하고 있다(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2항).

시장의 자율성이 실패하는 경우 정부나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예는 해운분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UNCTAD에서 만든 유엔정기선 헌장(1974년 Liner Code)과 유류오염손해배상 국제기금(IOPC FUND)이 그 예이다. 전자는 선진해운국이 독점하던 정기선 영업을 후진해운국 정기선사에게도 가능하도록 법적으로 화물 수송량을 할당하여주려는 시도였다. 후자는 유류오염 피해자에게 정유회사들이 원유수입량의 크기에 따라 기금을 갹출하여 피해자를 보상하는 제도로서 현재에도 잘 운영되고 있다.

각국의 선주·화주·조선소·금융권·학계 및 정부당국자들로 구성된 국제공조체제가 각 국가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으로 하는 정도로 운용되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될 것이다. 신조선에 필요한 선박금융제공을 금융당국이 조절할 필요성이나 현존하는 선박의 조기폐선 숫자를 더 크게 늘리면서 신조를 하는 방안 등의 논의를 각국의 대표자들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공조체제의 논의 시작은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는 원양정기선시장 기능회복을 위한 긍정적 신호탄이 될 것이다.

*주: 필자는 2012.4.9. 해운신문에 “해운·조선산업에서 계약자유의 원칙의 한계와 대책”이라는 칼럼에서 당시 계약자유의 원칙의 수정이 불가피함을 역설하면서 국제적인 공조체제를 통하여 선복의 공급량을 조절하여 해운조선의 불경기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진해운의 파산후 그런 필요성이 더 증대되어 중앙일보에 위와 같은 내용의 칼럼을 기고하게 되었다. 중앙일보 2017년 9월 18일자에 줄여진 형태의 글이 게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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