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협력, 한국카페리산업 새 지평

한중일·동북아 연결하는 고속환적서비스 개발
신규사업 신중, 제휴·협력으로 사업영역 확대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 한 우물만 50년째 파고 있다? 좋게 보면 우직하고 나쁘게 보면 바보 같은 짓이다. 한눈을 조금만 팔았다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을 터인데, 앞으로도 한눈을 팔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게 50년을 걸어왔고 앞으로 그렇게 또 100년을 항해 걸어갈 한일카페리선사, 부관훼리의 얘기다.

1970년 6월 18일 저녁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출항한 카페리선 ‘페리관부’호가 다음날 아침 승객 234명과 자동차 30대를 싣고 부산항에 입항했다. 50년전 오늘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사라진 한 서린 한일해협의 관부연락선이 양국간 협력과 우호의 상징으로 부활한 것이다.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는 한일 국교수립과 함께 1969년 개설된 정책항로로 한국 최초의 국적카페리선사인 부관훼리와 일본 선사인 관부훼리가 공동으로 50년째 공동운항하고 있는 항로다. 부관훼리는 우직하게 50년간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를 중단없이 운항하면서 한국 국제카페리산업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취항 50주년을 맞은 부관훼리를 찾아 지난 50년과 앞으로의 50년을 들어봤다.

고객과의 신뢰, 코로나에도 감편 없어

금요일 오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객운송이 완전히 중단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출입국장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터미널 CY 게이트는 수출입 컨테이너를 적재한 트레일러들로 붐비고 있었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사무동 4층에 위치한 부관훼리 본사 사무실도 선적을 문의하는 전화가 연신 울려대고 직원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업총괄을 맡고 있는 김정호 상무가 기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김정호 상무는 코로나 사태 확산으로 여객운송이 전면 중단되고 물동량도 줄어 어려운 상황이지만 ‘365일 중단 없는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를 운항한다’는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는 부관훼리의 1만 7천톤급 성희호(2002년 건조)와 관부훼리의 1만 6천톤급 하마유호(1998년 건조) 2척이 투입돼 운항중인데 코로나19 확산에도 운항중단이나 감편없이 데일리 운항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다.

김정호 상무는 “365일 정시입출항 운송서비스를 완료한다는 게 고객들과의 오랜 약속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회사 수익만 생각한다면 감편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라도 부산에 가면 운송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고객들의 오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감편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 고급스러운 성희호 스위트 객실
▲ 고급스러운 성희호 스위트 객실

한중일·동남아 연결하는 고속물류서비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기업문화 덕에 부관훼리는 30년 넘게 거래하는 화주나 거래처들이 유독 많다고 한다. 부관훼리가 24년전 처음으로 개발한 한중일 환적서비스인 Ferry to Ferry 서비스와 지난해부터 제공하고 있는 동남아 Air & Sea 서비스도 사실 단골 화주들을 위해 개발한 서비스라고 한다.

과거 부관훼리를 이용했던 한일 화주들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신속한 서비스를 요청해 한중카페리를 활용한 Ferry to Ferry 서비스를 개발하게 됐고 이들 화주들이 다시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동남아 Air & Sea 서비스로 확대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정호 상무는 “한중일 환적서비스는 1997년 무성해운의 CK훼리가 운항하던 연태-군산-부산 항로를 통해 처음 시작했고 지금은 한중카페리가 취항하는 전항로로 확대해 제공하고 있다. 경쟁사의 경우 한중일 환적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일 최단거리 항로에 최신 카페리선 2척을 투입, 운항시간에 여유가 있어 365일 언제라도 36시간내에 운송서비를 완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관훼리는 통상 부산항에서 밤 9시에 출항하지만 운항거리가 짧기 때문에 한중카페리의 입항 지연이나 국내 육상운송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화물을 적재하고 출항한다고 한다. 36시간내 반드시 완료되는 한중일 환적서비스 때문에 부관훼리는 냉동컨테이너가 아닌 일반 드라이 컨테이너로 농수산물과 같은 신선화물을 운송하기도 한다.

김정호 상무는 “중국에서 일본 시모노세키까지 신선화물을 드라이 컨테이너로 운송한다는 것은 부관훼리의 스케쥴과 시스템에 대한 한중일 고객들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지난해부터 동남아-한국-일본을 연결하는 동남아 Air & Sea 고속물류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부관훼리와 오랫동안 거래해왔던 고객들이 인건비 상승으로 공장을 중국에서 동남아로 이전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성희호 선상 미술관 '부관아트갤러리'
▲ 성희호 선상 미술관 '부관아트갤러리'

고객위한 혁신적 물류서비스 개발

고객들에게 신속한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면서 부관훼리는 고속물류서비스 뿐만 아니라 카페리업계에서는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물류서비스들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 항공기를 이용했던 디스플레이, 반도체 생산설비와 같은 고가 정밀화물들을 해상 일관 운송서비스로 전환시키고 일본선박에 선적이 금지됐던 한국 활어차량을 자체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선적이 가능하도록 만든 이가 바로 부관훼리다.

김정호 상무는 “지금이야 이러한 화물들의 카페리 이용이 보편화됐지만 처음 일본 화주들에게 카페리의 특성을 이해시키고 비용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납득 시키는데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부관훼리는 또 일본 정부가 한국 차량의 일본내 운행을 허용하지 않아 불필요한 화물이적 작업으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더블넘버 샷시라는 혁신적인 방안을 내놨다. 더블넘버 샷시는 하나의 샷시에 한국과 일본의 번호판을 동시에 부착해 견인차만 바꿔 운행하는 시스템으로 부관훼리가 한일 양국 정부를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운행이 허용됐다.

부관훼리는 기존에 발주에서 납품까지 45~60일이 소요됐던 일본 닛산자동차 공장에 납품되던 국내 자동차 부품회사의 제품 운송을 이적 작업이 필요없는 더블넘버 샷시를 활용함으로써 단 6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 성희호 오락실
▲ 성희호 오락실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 협력과 제휴

신뢰관계를 중시하는 부관훼리는 화주 고객뿐만 아니라 거래처들과도 오래 인연을 맺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역 및 운송회사인 ㈜동방, 검수회사인 범아상사 등과는 무려 50여년 가까운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김정호 상무는 “동방과는 1972년부터 거래했으니 거의 48년을 함께 했다. 우리가 직접 하역이나 운송, 물류창고업 등에 진출할 수도 있었지만 동방과 제휴를 통해 손익을 넘어서는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회사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거래처와 오랜 신뢰관계를 쌓아간다는 게 부관훼리의 기업문화”라고 밝혔다.

부관훼리의 이와 같은 기업문화는 무리하게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대신 협력이나 제휴를 통해 서비스 질을 제고하는 사업전략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김정호 상무는 "경쟁업체의 물량을 넘보는 신규항로 개설이나 타항로 인수, 포워딩이나 여행업 진출 등 항로 및 업종 다변화를 통한 사업 확장보다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사업 영역이 있다면 기존 거래처와 지분투자를 비롯한 적극적인 제휴와 협력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밝혔다.

부관훼리가 직접 제공하는 포워딩이나 여행업도 신사업 확장이라기 보다는 고객의 요구를 위한 최소한의 서비스에 가깝다. 부관훼리는 실화주가 공장 출고부터 납품까지 요구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포워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여행업도 KTX나 SRT를 이용해 부관훼리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이 가능하도록 KTX·SRT 발권 업무만 수행하고 있다.

소규모 힐링 상품, 직원들이 직접 개발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관훼리지만 여객부분은 항로의 특성상 한일관계 악화나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와 같은 외생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2017년 20만명을 돌파했던 이용객수는 연이은 외생변수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10만명에 그쳤고 올해는 코로나19로 아예 여객 영업을 중단했다.

김정호 상무는 “코로나 사태로 여객영업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지만 그 이전부터 자유무역 확산으로 소상인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단체 관광객도 줄어드는 추세였다. 최근에는 3~4명 단위의 자유여행이 보편화되는 추세여서 청정지역인 시모노세키가 가진 강점을 활용한 트래킹, 역사탐방, 소도시 탐방, 먹거리 여행 같은 힐링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관훼리는 직원들이 직접 시모노세키 현지에서 대중교통을 활용한 여행지와 맛집 등을 체험하고 만든 여행 상품들을 모아서 정기적으로 콘테스트를 실시하고 우수한 상품을 홈페이지에 게시해 고객들이 자유여행시 참고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김정호 상무는 “최근의 여행 패턴은 소규모 자유여행이 대세다. 이러한 여행 패턴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는 객실도 자유여행에 맞게 소규모 추세에 부응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또 일본어를 못해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주요 관광지와 맛집들에 한국어 간판이나 메뉴판 등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번역앱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와이파이존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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