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2년간 생계를 위해 장사를 했지만 떠돌이로 장사를 하다 보니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돈을 좀 벌었다가도 손해를 입는 경우도 많아 큰돈을 벌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돈을 번다해도 그것이 큰 보람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그리고 초등학교 친구들이 중학교에 다니는 것을 보면 너무나 부러웠고, 서울에 가면 고학으로 야간 중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가슴
자서전
한국해운신문
2011.02.08 20:57
-
나는 열한 살의 나이였지만 논에 모심고, 김매고, 나무하고, 새끼 꼬고, 이엉도 엮었다. 논에 모를 심고 난 후 김을 세 번 매었는데 처음엔 아시, 두 번째는 두벌, 세 번째는 만물이라고 불렀다. ‘아시’는 논풀을 손으로 매주는 것이고, ‘두벌’은 호미로 벼와 벼 사이 흙을 갈아엎어 잡풀을 제거하는 힘든 작업이었다
자서전
한국해운신문
2011.01.31 14:46
-
우리는 둘째 숙부 댁에 얹혀 지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숙부는 전쟁발발 전에 지역방위군인 호국군 경력이 있어 북한 인민군 점령하에서 불안에 떨다가 제일 먼저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징발되었다. 집안은 불안과 궁핍 속으로 빠져들었다. 방 한 칸에 열 명이 넘는 대식구가 함께 잠을 자고 밀기울 죽, 피죽(논에서 벼와 함께 섞여 자라는 잡풀 씨를 갈아서 밀가루&mi
자서전
한국해운신문
2011.01.27 09:52
-
중국의 세계 조선ㆍ해운 독과점시대 대비해야1. 서언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일어났었던 주요 사항들을 해운의 시각에서 정리한다면 크게 ①영국해운세의 몰락 ②그리스 해운의 성장 ③컨테이너 혁명 ④한ㆍ일의 조선시장 독점 ⑤편의치적 ⑥IMO의 부상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지난 1세기가 비교적 순탄한 변화와 흐름이었다면 해운계의 지난 십년은 Super cy
자서전
한국해운신문
2011.01.21 14:20
-
원래 고향집은 서산군 음암면 도당리 278번지였다. 사랑방에서 천자문을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와 베를 짜면서도 한글을 깨우쳐 주시던 어머니(동래 정씨:혜근)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누룽지를 꽁꽁 뭉쳐서 손에 쥐어 주시기도 했지만, 한글을 가르쳐 주실 때에는 무척 엄하신 분이셨다.다섯 살 되던 해(1945년) 음암공립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공식 절차
자서전
한국해운신문
2011.01.21 09:29
-
1950년 6월 25일 아침, 전쟁이 났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권총을 찬 옆집 군인이 지프를 타고 동인천역 쪽으로 달려갔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아버지가 피난을 가야 한다며 어린 아이들부터 떠나라고 하셨다.당시 15세이던 막내 고모(인순)와 10살인 나, 신흥초등학교 1학년이던 동생(종렬)과 4살 된 여동생(
자서전
한국해운신문
2011.01.14 10:31
-
불과 1세기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 5위 해운강국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있는 한국해운은 그동안 많은 전문 해운인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빚어낸 값진 열매다. 한국해운신문은 그동안 한국해운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던 선배 전문 해운인들의 성취와 고노들을 우리 후학들이 배우고 이를 통해 해운사랑 정신을 일깨울 수 있도록 많은 기획들을 마련해 독자들로
자서전
한국해운신문
2011.01.07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