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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장난 같은 이야기다.초등학교 2학년 여덟 살 난 셋째 손녀 다함이가 이 할아버지에게 자기 애 이름을 지어 달란다. 엉뚱하다. 20년쯤 이후에나 아이를 낳을 터인데. 이를 두고 기상천외奇想天外라는 건가? 아니면 샘터에서 숭늉 달라는 건가? 하기야 타임머신을 타면 20년쯤은 순식간이다. 할아버지가 여든을 훨씬 넘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니 자기 애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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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운신문
2019.02.2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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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질 않는 옛 추억안형!소식이 끊긴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동안 외국에서 인생살이에 희로애락이 많으셨지요. 이계복 KBL대표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안형의 미국 주소를 알게 되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와 대학의 후배라 각별한 관계입니다. 안형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하더군요. 안형이 귀국하면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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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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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일기耕 海 김 종 길나는 TV드라마를 보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이유는 교묘히 삼각관계를 만들어 가정불화, 사회갈등, 부조리, 불륜 등등으로 정서를 함양시키기는커녕 오리려 거치러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렇게 쓰지 않으면 시청률이 떨어져 중간에 종연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작가들도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나는 요즘『전원일기』재방영을 보느라 저녁시간을 즐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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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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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晩秋의 초저녁, 겨울을 재촉하는 빗방울을 맞으며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그의 아들이 건네준 초대권을 입장권으로 바꾸어 둘이서 좌석을 찾아 앉았다. 2층 왼쪽 날개에 계단마다 좌석이 둘씩 배열되어 두 사람만의 공간인양 호젓했다.무대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랜드피아노가 가까이 내려다보였고, 2층은 물론 1층과 3층 객석이 눈에 들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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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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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耕海 김종길나는 자랑을 즐겨한다. 그렇다고 허풍을 떨거나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자랑한다. 첫 손녀를 가졌을 때 ‘젖 달라고 응애응애. 응가 한다고 응애응애’하는 것도 신기하고 귀여워 자랑했다. 세상엔 나만 손녀가 있는 듯. 옆에서 ‘자랑하려면 돈 내고 하세요’라고 빈정거렸다. 그러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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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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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해님은 쨍쨍하늘은 티끌 한 점 없이 파랗다구름이 솜사탕 같다 일어서 손을 길게 내밀면 잡힐 것만 같다한 묶음 입에 넣으면 가슴이 휑하게 꿰뚫릴 것만 같다구름이 목화더미 같다늛다랗게 펼쳐놓고 엄마 오라고 떼를 쓴다.하늘보다 넓은 엄마 젖가슴 만지작거리며 새록새록 잠든다.엄마는 어디 계실까햇빛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는 별나라에 계실까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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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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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가 묵고파서저녁 여덟시 반경 동네 상가를 걸어왔다.가게 앞 계단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구걸하는 분은 아닌데 초췌했다. 남루하지는 않은데 가련해 보였다. 무언가 애원하는 표정이었다.할머니 앞을 지나 몇 발자국 옮겼는데 ‘그냥 가면 안 되지!’란 양심의 소리가 들렸다. 가는 길을 멈추고 되돌아서 할머니께로 다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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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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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빈둥 거린다耕 海 김 종 길세상이 들끓는다. 연일 폭염경보가 발령되고 열대야가 계속된다. 온열병으로 숨을 거두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쪽방촌 노인들이 지옥 같은 밤을 어떻게 지새울까? 수많은 가축이 폐사된다. 가두리 물고기도 하얗게 배를 들어내고 죽는다. 농작물 폐해도 심각하다.예비전력이 바닥을 친단다. 정전이 된다면 어쩌나 걱정이다. 정치, 경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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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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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나에게 등나무지팡이가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아마도 30년도 더 되었다. 후배가 외국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나에게 정성스럽게 포장된 지팡이를 선물했다. 고마운 척 했으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쌩쌩한 나에게 지팡이를 선물하다니! 날 뒷방노인으로 취급하는 거야”란 생각이 스쳐서였다. 그러다 고마운 생각으로 바뀌었다. 등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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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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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추억어머니를 뵈웠다. 깜작 놀랐다. 세상 떠나신지 50년을 훨씬 지났으니 놀랄 수밖에.세면대 위 거울에서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신다. 은발의 곱슬머리가 웨이브를 그리며 오른쪽 귀를 살짝 덮었다. 시원한 이마와 미간에서 곧게 흘러내린 부드러운 코, 그리고 기다란 인중 밑에 꽉 다문 입이 균형 잡히고 기품이 서려있다. 인자스러우면서도 약간 냉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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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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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배순태 인천항 도선사 1주기 추모식과 묘비제막식에서 추모사를 했다.『존경하는 해봉 배순태 선장님 영전에 삼가 고합니다.떠나가신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그립고 뵈옵고 싶습니다. 지금 무얼 하고 계십니까?생전에 못하셔서 아쉬워했던 북극항해를 하고 계십니까?아니면 북극성에서 대한민국의 해운과 항만을 내려다보고 계십니까?떠나신 빈자리가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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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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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望九망구파란만장의 2017년, 내 나이가 望九이었다. 90세를 바라본다하여 81세를 望九망구라 한다. 가파른 아홉 계단을 더 올라가려니 막막하다.눈은 아물거리고 귀는 먹먹하고 정신은 혼미하다. 거기에다, 허리는 꾸부정하고 걸음걸이는 휘뚝거릴 노추老醜의 내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제아무리 절제하고 몸을 정갈하게 가꾼다한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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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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耕海 김종길십리를 같이 가자면 이 십리 길을 못 갈망정 그와 십리만이라도 기꺼이 동행할 수 있다면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벗어주지 못 할망정 그에게 겉옷만이라도 즐거이 입혀줄 수 있다면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대어주지 못할망정 그에게 빙긋이 웃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그렇게 사는 것이 신앙인인데알면서도 그렇게 못하는 게 내가 속물이라서 일까내 잔이 넘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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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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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으면 떠오르는 진주들(제3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기념 한영대역 대표작 선집)김종길jkihm@hanmail.net 지난여름. 끝없는 해변에 피서객들이 들끓는다. 미국 동북부 휴양도시 애틀랜틱시티Atlantic City에서. 대서양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도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보다.모래 위에 뒹굴며 태양에 살결을 내맡긴 미끈한 인어人魚들, 파도를 타며 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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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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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5세대耕海 김종길 jkihm@hanmail.net염원했던 5세대 이메일이 날아왔다. 2017년 3월 12일이다. 영롱한 보석을 만지작거리듯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내 생전에 5세대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으면 했는데 이렇게 빠를 줄이야.Dear GrandpaI miss you very much. I wish that I could go to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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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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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悔恨耕海 김종길 jkihm@hanmail.net「회한悔恨」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뉘우치고 한탄함’이라 했다. 또 한탄恨歎을 찾아보았다. ‘원망을 하거나 뉘우침이 있을 때에 한숨을 쉬며 탄식함’이라 했다.하여, 회한은 인생의 장강長江을 건너와 되돌아갈 수 없는 황혼의 노령老齡에 잘못을 뉘우친들 소용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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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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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憧憬, 그리고 성취내가 중학생 때, 국어교과서에 모윤숙 시인의 란 시가 게재되었다. 읽고 또 읽었다. 구구절절이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내 가슴에 애국심이 꿈틀거리기도 했다.가슴에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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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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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야! 비행기야!너 어디로 가니미국 하늘에서 우리 다함이 보이거든이 할아버지가 널 많이많이 사랑한다고 전해다오비행기야! 비행기야!너 어디에서 오니미국 하늘에서 우리 다해 봤느냐많이많이 예뻐졌더냐.비행기야! 비행기야!필라델피아로 가는거냐우리 다슬이 만나면이 할아버지가 널 많이많이 보고 싶다고 전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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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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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80을 되돌아보며팔순이 되었습니다.예순까지만 살았으면 했습니다. 60대를 넘기곤 일흔부턴 언제 꺼질 줄 모르는 풍전등화(風前燈火)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고 사는 건 자의가 아니어서 팔순이 되었습니다. 참 오래 살았습니다.항간에 9988234란 숫자가 나돕니다. 무슨 숫자냐고 물었습니다.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삼일 앓다가 죽겠다는 숫자랍니다.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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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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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동무耕 海 김 종 길뒷산 관악산으로 올라간다.약수터 근처에 벤치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벤치가 산으로 올라오느라 숨이 가쁠 터이니 쉬어가란다. 한적한 벤치를 골라 앉는다. 푸르른 숲에 생명이 넘친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하다. 하늘과 숲과, 바람과 내가 하나다.한 남자가 다가오며 “구 구 구”하고 소리를 지르니 비둘기들이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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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6 11:50